경기에 나선 두 팀 중 한 팀은 반드시 패한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토너먼트의 법칙이다. 단판승부에서 만난 강팀끼리의 맞대결은 그래서 더욱 짜릿한 쾌감을 팬들에게 선사한다. 단 하나의 실수가 패배로 직결될 수 있는 살얼음판 위의 90분 승부, 믿을 것은 나 자신과 팀 동료들뿐이며 한없이 둥근 공은 결코 믿어서는 안될 경계대상 1순위. 이만큼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패배에도 정도가 있다.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도, 잠에서 깨어나 결과를 확인하던 이들도 아마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 4강에서 독일과 만난 브라질이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1-7 대패를 당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전세계는 브라질의 이 패배를 두고 벌써부터 경기가 열린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의 이름을 따서 '미네이랑의 비극'이라 부르고 있다. 64년 전 브라질에 끔찍한 아픔을 안겨준 '마라카낭의 비극' 후속편인 셈이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은 각오가 대단했다. 오랜만에 개최하는 월드컵, 너무나 당연하게 그들은 이번 기회에 브라질 축구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씻어내고자 했다. 64년 전 1950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 1-2로 패한 '마라카낭의 비극'은 대표팀 유니폼 색깔까지 바꿔버린, 브라질이 가장 잊고 싶어하는 기억이자 잊을 수 없는 상처였다.

그러나 마라카낭의 비극 대신 브라질은 미네이랑의 비극이라는, 새로운 축구 역사의 한 장을 새로 쓰게 됐다. 이제 대중은 브라질 축구 최악의 패배를 떠올릴 때 마라카낭 대신 미네이랑을 떠올릴 것이다. 역설적으로 따져보면 미네이랑의 비극은 마라카낭의 비극을 씻어내는 또다른 방법이 된 셈이다. 물론 브라질이 원한 바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브라질은 왜 이런 끔찍한 패배를 당해야했을까. 물론 독일은 강한 상대였고, 이날 완벽한 조직력을 보여주며 네이마르와 티아구 실바가 빠진 브라질을 철저하게 유린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브라질이 역대 A매치 최다실점의 기록을 썼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연달아 4실점을 허용한 전반 23분부터 29분까지 '악몽의 6분'을 돌이켜보자. 브라질은 박스 안에서도 밖에서도 무기력했고 압박은커녕 집중력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수비수들은 독일의 공격수들을 매번 놓치고 허둥댔고 뒷공간은 활짝 열렸다.
네이마르와 실바가 동시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을 맞았을 때부터 브라질의 불안은 예고되어 있었다. 특히 주장이자 수비 라인의 핵인 실바의 부재는 강력한 독일의 전차군단 앞에서 포백라인이 수수깡처럼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실바가 이 경기를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장면이 연달아 나왔다. 단테와 페르난디뉴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기대한 역할을 손톱만큼도 해주지 못했다. 18번이나 슈팅을 때리고도, 그 중의 13개를 유효슈팅으로 기록하고도 골을 넣지 못한 공격진의 문제는 차라리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 탓이라도 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브라질이 보여준 극심한 수비 불안은 자멸이나 마찬가지였다.
말을 잃고 경기장을 떠나는 팬들의 뒷모습과 그라운드 위에 주저 앉은 브라질 선수들의 모습은 패배가 불러오는 안타까움 그 이상의 비극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정상을 바라보던 팀이 무너진 모습은 지켜보던 이들에게도 충격이었다. 특유의 삼바리듬을 타고 12년 만의 우승을 노리던 브라질의 참혹한 퇴장이 남긴 것은 역사, 그리고 마라카낭을 뛰어넘는 비극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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