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소녀 성공기’ 이후 12년 만에 안방극장에서 재회한 장혁과 장나라가 시청자들을 들었다놨다 하고 있다. 이미 증명됐던 믿고 보는 뛰어난 조합과 한명이 웃기면 한명이 짠하게 만드는 철저한 역할 분담은 식상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애청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9일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 3회는 하룻밤의 실수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된 김미영(장나라 분)과 이를 알게 된 이건(장혁 분)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그려졌다. 미영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건의 아기를 임신한 후 어머니(송옥숙 분)에게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임신이 축복이 아닌 슬픈 운명의 시작이 된 미영의 절절한 눈물은 장나라의 섬세한 감정 연기와 맞물리며 시청자들을 울컥하게 했다. 여리여리한 몸매이지만 어딘지 강단이 느껴지는 장나라 특유의 ‘캔디 이미지’와 좀 더 성숙해지고 세밀하게 다듬어진 감정 연기는 미영에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하고 울컥하는 미영의 흔들리는 눈빛은 왠지 내 이야기일 것 같은 판타지를 충족시켰다. 장나라가 돋보이는 감정 연기로 시청자들을 울렸다면 장혁은 또 한번 작정하고 웃겼다.

이미 첫 방송부터 독특한 어투와 다소 코믹스럽게 무장된 표정 연기는 미영을 민변호사(김영훈 분)로부터 구해주는 장면과 임신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후의 만화 같은 설정의 재미를 높였다. 미영에게 함부로 대하는 민변호사에게 통쾌한 일갈을 하는 장면에서 능청스럽게 “나야 건이야”를 외치며 등장한 장혁은 웃기면서 어쩐지 매력이 넘쳤다. 백마 탄 왕자인데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이후 임신을 알게 된 이건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실신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장혁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했다.
이 드라마는 사랑하지 않는 남녀가 임신을 계기로 갈등 끝에 사랑하는 사이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는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이야기를 그린다. 로맨틱 코미디가 그러하듯 남녀 주인공의 삐걱거림 속에서 웃음과 달달한 로맨스를 형성하는 게 목적이다. 이 같은 기본 구성에 충실한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통통 튀는 만화 같은 설정이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의 차별점을 두고 있다.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을 떡방아를 찧는 연기로 우회적으로 표현하거나 임신을 기뻐하는 이건의 할머니(박원숙 분)의 반전 표정, 진지한 갈등 속에서도 웃음 장치를 빼먹지 않는 구성은 만화를 보는 듯 재기발랄하다.
다소 유치하게 여겨질 수 있는 장면이지만 제작진의 감각적인 편집과 선을 넘지 않는 적절한 배합으로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러운 흐름의 이야기를 제공하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이를 표현하는 두 배우 장혁과 장나라의 연기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진지해도 대놓고 웃기는 장혁과 공감 가득한 캔디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이끌어내는데 큰 장기를 발휘하는 내공의 장나라는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리고 있다.
‘명랑소녀 성공기’ 이후 12년 만에 한 작품에서 만난 이들은 흠 잡을 데 없는 조화 속에 한명은 웃기고 한명은 울리는 시청자와의 ‘밀고 당기기’를 현명하게 하고 있다.
한편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대만드라마 ‘명중주정아애니’가 원작으로, 모르는 남자와 우연한 하룻밤으로 임신까지 이르게 된 한 여자와 대대손손 30대에 절명하는 집안의 내력으로 인해 후세를 잇는 것이 절대적 소명이 된 한 남자의 예기치 않은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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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널 사랑해’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