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이 생각보다 길어진다. 딜레마가 시작되고 있다.
롯데는 지난 9일 대구 삼성전에서 외국인 타자 루이스 히메네스(32)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타격 슬럼프가 길어지자 어쩔 수 없이 선발에서 빠졌다. 결정적 순간 대타로 나와 기대감을 높였으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히메네스는 이날 3-5로 추격한 9회 1사 2루 신본기 타석에서 대타로 등장했다. 홈런 한 방이면 동점을 만들 수 있는 상황. 그러나 히메네스는 임창용의 초구 직구를 스트라이크로 흘려보낸 뒤 2구째 직구에도 헛스윙했다. 3구째 볼을 골라냈지만 4구째 포크볼에 방망이가 헛돌아 삼진으로 물러났다.

롯데는 후속 이승화의 우전 적시타로 한점차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정훈이 우익수 뜬공 아웃되며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아껴둔 히메네스 대타 카드가 실패로 돌아간 게 치명타였다. 히메네스는 6월부터 부진의 조짐을 보이더니 7월에는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지난달 26일 대전 한화전에서 안타를 치고 난 뒤 타구가 먹히는 바람에 왼쪽 엄지에 통증이 생겼고, 그 이후로 부진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히메네스의 시즌 성적은 여전히 훌륭하다. 60경기 타율 3할3푼6리 74안타 14홈런 53타점 35볼넷. 출루율(.430) 장타율(.591) OPS(1.021) 모두 수준급이다. 그런데 이 기록의 대부분이 4~5월에 벌어놓은 것으로 6월부터는 조금씩 야금야금 까먹어가고 있다.
6월 이후 23경기에서 히메네스는 타율 2할7푼8리 22안타 3홈런 12타점 12볼넷을 기록 중이다. 출루율(.380) 장타율(.443) OPS(.823) 모두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홈런과 2루타 등 장타가 눈에 띄게 떨어지며 상대 마운드를 압박하는 위압감이 사라졌다. 결국 평균으로 수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7월 들어 그 폭이 더욱 빨라졌다. 7월 7경기에서 21타수 4안타 타율 1할9푼이다.
결정력도 초반만 못하다. 5월까지 37경기에서 41타점으로 경기당 하나꼴로 타점을 쓸어담았지만 6월 이후 23경기에서 12타점을 두 경기에 하나꼴로 타점을 볼 수 있다. 최근 4경기에서는 삼진만 6개를 당했다. 낮은 공에 쉽게 속아 넘어가길 반복하고 있다.
시즌 초반 무시무시한 괴력을 뽐낸 히메네스의 부진이 깊어질수록 롯데 딜레마도 커진다. 롯데는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히메네스와 포지션이 겹치는 박종윤을 좌익수로 썼다. 지명타자 최준석과 함께 같은 포지션의 3명을 모두 활용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런데 히메네스가 부진에 빠지면서 롯데의 딜레마도 커지고 있다. 특히 박종윤이 9일 삼성전에 투런 홈런을 터뜨리는 등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어 타선에서 쉽게 뺄 수 없다. 지명타자 최준석은 4번타자 위치가 확고하다. 히메네스는 타격이 살아나지 않으면 쓰임새가 몹시 떨어진다. 일단은 그가 회복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롯데의 딜레마도 깊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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