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2’ 평화는 결코 환한 대낮에 오지 않는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7.10 08: 35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130분 분량의 이 SF물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아마도 ‘trust’가 될 것이다. 뾰족하게 대립하던 유인원과 인간 사이에 ‘신뢰’라는 짧지만 임팩트 있는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등장하고, 양쪽은 이 ‘신뢰’라는 심리적 지뢰밭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고 시험하다가 결국 공멸 직전에 이르고 만다. 불확실하고 두려운 나머지 상대를 의심하면 어김없이 루저가 된다는 평범한 교훈도 일깨운다.
오락성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모션 캡처와 컴퓨터그래픽, 여기에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라는 철학적 메시지까지 담아 미국에서 높은 평점과 호평 세례를 받았지만, 막상 베일을 벗은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맷 리브스 감독)은 3년 전 1편보다 조금 흥미로워진 수준일 뿐, 재 관람 욕구를 솟구치게 할 정도의 뛰어난 서사와 만듦새는 아니었다. 특히 3D로 볼 만큼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입체적인 장면이 눈에 띄지 않은 점 역시 아쉬웠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예상했듯 가족애.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포개놓은 두 주인공 그룹 유인원과 인간의 흡사한 가족 배치가 시선을 잡아챈다. 유인원 우두머리인 시저(앤디 서키스)는 사랑하는 아내와 이제 막 어른 침팬지가 돼가는 장남에 이어 갓 태어난 늦둥이 아들을 둔 가장이다. 이에 맞서는 말콤(제이슨 클락)도 간호사 출신 연인과 그림 그리는 걸 즐기는 사춘기 아들을 둔 가장. 시종일관 둘 사이에 묘한 교집합 정서가 흐르고, 이 교감과 부성애는 영화를 지탱하는 좋은 땔감으로 쓰인다.

가족과 한 집단을 대표하는 두 남성성은 처음엔 강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부딪치는 듯싶지만, 어느 지점부턴 조금씩 타협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이로 변모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금단의 땅인 유인원의 숲까지 들어가 수력발전을 일으키며 원하던 전력을 얻게 되고, 유인원도 점차 자신을 학대하던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나 비둘기파를 못 마땅해 하는 호전적인 매파가 존재하게 마련이고, 이들 눈엔 애초부터 유인원과 인간의 공존이란 불가능한 영역이다.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자급자족이 원칙인 유인원과 달리 전력, 음식, 무기를 끊임없이 탐하는 인간의 소유욕을 대비시키며 과연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영화는 우회적으로 묻고 있다. ‘유인원은 절대 동족을 죽이지 않는다’는 그들 세계의 행동 강령 1호도 서너 차례 등장하며 전쟁과 경제 보복을 일삼는 강대국의 탐욕도 돌아보게 한다. 말콤의 아들이 유인원에게 혼비백산 쫓기며 도망갈 때 떨어뜨리고 간 가방을 되돌려 받는 장면이 인상적인 건 그래서다.
그러나 가족 휴머니즘 영화에 대한 지나친 강박이었을까. 유인원과 인간의 첨예한 갈등과 극적 해소가 아닌, 유인원 내부의 헤게모니 싸움에 시간을 더 할애하다 보니 중반부터 긴장감이 완만한 하강 곡선을 긋는다.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유인원 넘버2 코바가 시저를 제치고 정권을 탈취하는 과정도 다소 단선적이고, 말콤 가족이 생사 위기에 처한 시저와 그의 아내를 돕는 에피소드도 강렬하게 와 닿지 않는다. 몸에 박힌 총탄을 빼주는 수준이 아니라 대신 총을 맞는 정도는 돼야 눈높이 높은 한국 관객들의 감정 이입을 유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대신 3형식을 넘지 않지만 유인원들이 수화 대신 중요한 포인트마다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장면에선 영화적 짜릿함이 느껴졌고, 할렘처럼 변한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유인원들이 말을 타고 점령자처럼 등장하는 장면도 꽤 깊은 인상을 남긴다. 기대했던 명배우 게리 올드만은 호전적인 인류 공동체 리더로 나오지만 적은 분량과 기대에 못 미치는 역할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12세 관람가. 10일 개봉.
bskim0129@gmail.com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