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들은 용병이라고도 불린다. 돈을 받고 싸워주는 존재기 때문이다. 용병이라는 말 속에는 상대적으로 국내 선수들에 비해 팀에 대한 애정이나 소속감이 덜할 것이라는 편견도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더스틴 니퍼트(33, 두산 베어스)를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니퍼트는 팀에 대한 애정과 승리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하다. 경기장에서는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바라보는 동시에 마운드 밖에서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까지 실천하고 있는 니퍼트다.
외국인 선수 가운데 으뜸인 것은 물론 국내 선수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니퍼트는 팀 승리에 대한 의욕이 강하다. 이런 의욕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최근에 있었다. 니퍼트는 지난 11일 잠실 한화전에서 팀이 6-9로 패하자 투수조 미팅을 주관했다. 외국인 선수로는 매우 희귀한 일이다.

두산 관계자는 “니퍼트가 외국인 선수로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투수조 미팅을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니퍼트는 상황이 어렵지만 안타를 맞더라도 마운드에서 당당해지고, 동료들을 믿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팀을 다시 4강에 올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말로만 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대로 팀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자 니퍼트는 등판을 자청했고, 팀 승리에 기여했다. 12일 잠실 두산전에서 팀이 4-3으로 앞서던 7회초에 등판한 니퍼트는 2⅔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한화 타선을 봉쇄했고, 통산 첫 홀드를 기록했다.
오는 15일 마산 NC전 선발로 내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날은 니퍼트의 불펜피칭이 있는 날이었다. 니퍼트는 불펜피칭 대신 실전 등판을 택했다. 선발 등판 때보다 짧은 이닝을 던지자 비슷한 구위였음에도 한화 타자들은 니퍼트의 공에 적응하지 못했다. 선두타자 이용규의 중전안타 다음부터는 7타자 연속 범타(아웃카운트 8개 중 나머지 1개는 이용규의 도루 실패)였다.
팀이 6-3으로 승리한 직후 니퍼트는 “이겨서 좋은 경기다. 들어갈 때 점수를 생각하지 않았고, 내 역할에만 신경을 썼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까지 막아 세이브를 올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냐는 질문에는 “팀 승리만 생각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실전 등판을 하지 않는 날임에도 같은 구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니퍼트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왜 다르겠는가? 나는 (선발에 앞서 불펜 피칭이 있는 날에) 항상 4~50개 정도의 공을 던진다. 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니퍼트의 설명이었다.
외국인 선수의 재계약 여부는 팀 성적보다 철저히 개인 성적에 의해 결정된다. 갑자기 구원 등판하는 것은 개인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니퍼트는 팀을 위해 궂은일을 자처했다. 투수조 미팅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이는 좋은 선수고,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을 해주는 이는 좋은 동료다. 니퍼트는 좋은 선수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외국인 선수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미안할 정도로 좋은 동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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