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순제작비 9억 원이 소요된 공포 영화 ‘소녀괴담’이 개봉 열흘 만인 13일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들어오기 어렵다는 7월 극장가에 입장한 이 무모한 영화가 노는 물이 한참 다른 ‘트랜스포머’ ‘혹성탈출’과의 맞대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이제 수익까지 내고 있는 것이다.
하나 더 흥미로운 건 이 영화사가 자신들의 수익 30%를 스태프들과 나누겠다는 사실이다. 제작사가 촬영 전부터 스태프들에게 이 내용을 공지했고, 변심 방지 차원에서 서면으로 약정까지 해뒀다고 한다. 대략 관객 한 명당 제작사 몫이 3000원 안팎이므로 13일부터 관객이 한 명씩 늘 때마다 스태프들에게 약 1000원의 보너스가 ‘캐시백’ 되는 셈이다.
물론 청소년 관객이 대부분인 ‘소녀괴담’은 조조, 카드 할인 관람이 많아 객 단가가 다른 경쟁작 보다 다소 낮을 것이다. 이 혜택을 받는 대상과 기준 역시 지나칠 만큼 민주적이다. 오인천 감독부터 촬영, 조명, 미술 감독은 물론이고 대학생 알바로 참여한 막내 스태프까지 모두 n분의 1로 수익을 공유하게 된다.

배우들도 주, 조연 구분 없이 대사가 있는 전 배우들이 같은 액수의 보너스를 받는다. 이 뿐만 아니다. 배우들의 매니저와 홍보대행사, 녹음실, 편집실, 현상소 같은 후반 작업 인력들도 모두 입금을 기대하게 됐다. 영화 상영 후 올라오는 엔드 크레딧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원이 이 캐시백의 수혜자가 된다. ‘도와주신 분들’을 제외하고 현장을 지켰던 150여명이 마당 쓸고 동전 줍게 된 것이다.
그동안 영화가 흥행하면 톱스타에게 러닝개런티를 지급하고, 주요 스태프들에게 수백만 원씩 돌리며 기쁨을 자축한 제작사는 있었지만 ‘소녀괴담’처럼 말단 스태프까지 보너스를 똑같이 가른 적은 없었다. 이렇다 보니 흥행 기여도와 개런티에 비례해 보너스를 받아야 한다는 이견도 나왔을 법 하다. ‘취지는 공감하나 내가 왜 막내와 같은 돈을 받아야 하느냐’는 일부 선임들의 역차별 문제제기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제작사의 대응은 차분하고 일관됐다. ‘네 영화 내 영화가 아닌 모두의 영화인만큼 개런티와 달리 보너스는 n분의 1로 나누는 게 맞다’는 논리였다. 저마다 숙련도는 다르지만 영화에 임하는 열정은 서열을 매길 수 없고 모두 같다고 본 것이다. 그런 만큼 보너스는 개개인의 기여도가 아닌 팀워크와 열정에 대한 보상이 돼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이 영화사는 작년 ‘관상’ 흥행 후 제작사 수익 절반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해 화제가 됐다.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단 측은 “설립 이후 현금 기부액 중 최고였고,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이라고 밝혔다.
주피터필름 주필호 대표는 당시 “관상이 잘 된 건 1차적으로 유명 배우와 고참 스태프들의 공이였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장 막내 일꾼들과 스크린 뒤에서 밤을 새운 후반 작업 업체들의 불면과 정성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주연 배우에게 수억 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면서 다음부턴 상대적 박탈감을 갖지 않게끔 스태프들을 위해 보다 합리적인 수익 공유 모델을 고심했고 ‘소녀괴담’이 그 첫 결실이 된 것이다.
문제는 액수가 아니다. 중요한 건 내 재능 이상으로 번 자산과 부가가치를 동료들과 나누겠다는 ‘캐시백’ 정신이다. 99개를 가진 사람이 악착같이 하나를 더 취해 100개를 채우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우리 사회는 탐욕 가득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 천석꾼에겐 천 가지의 고민이, 만석꾼에겐 만 가지의 고민이 따른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건 유명 재력가들의 사나운 말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모두의 예상대로 이십세기폭스의 ‘혹성탈출2’가 개봉 첫 주말 한국 극장가에서 환영 받았다. 고속도로에서 정속 운전하던 한국 경차들을 향해 쌍라이트를 켜고 경적까지 울리며 난폭 추월 운전한 솜씨다. ‘한국 영화도 툭하면 전야 개봉하지 않냐’며 악화된 여론에 물 타기 하는 마케팅 수준은 안쓰러움을 넘어 측은할 정도다. ‘소녀괴담’이 이런 악조건 속에서 30%라는 높은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버티고 있다는 게 기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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