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는 유쾌하다. 심각한 순간에도 재치를 곁들인다. 대중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가 연출한 영화 ‘롤러코스터’(2013)만 봐도 그렇다. 시종일관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럼에도 ‘하정우=코믹’으로 볼 순 없다. 출세작인 영화 ‘추적자’(2008)를 포함해, 전작인 영화 ‘더 테러 라이브’(2013)까지 진지한 캐릭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하정우의 코믹함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그가 맡은 주인공 돌무치는 10대 초반의 지능을 지닌 18세다. 극을 이끌어가는 입체적인 인물인 만큼, 영웅으로 그려질 법도 한데 끝까지 바보 같은 웃음소리를 낸다. “아따, 참말로 거시기 허요”라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내뱉는 그에게선 순박함이 느껴진다. 동시에 하정우의 매력적인 캐릭터 열전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궁금해진다.
◇ 돌무치, 하정우의 캐릭터

하정우는 자신의 역할이 코미디였다고 설명한다. 조윤 역의 강동원이 ‘멋짐’을 담당했다면, 그는 웃음을 담당한 셈이다. “끝까지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는 인물은 처음”이라며 “유연하고 희화화된 인물이 영화 안에서 무겁게 느껴지지 않길 바랐다”고 말한다. 영화 ‘12 몽키즈’(1995)의 브레드 피트를 참고했다. 눈빛과 제스처만으로 캐릭터의 특징을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돌무치는 외양도 압도적이다. 용감한 장군이지만 추남(醜男)으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소설 ‘오델로’의 오델로를 모티브로 했다. 초반에는 기름진 더벅머리를, 후반에는 화상자국이 역력한 민머리를 고수한다. 덕분에 촬영장에서 첫 일과는 면도였다. “새벽부터 두피에 면도칼을 대면 기분이 오묘하다”고 묘사한다.
하정우의 아이디어도 가미됐다. 멍한 눈빛의 돌무치는 종종 고개를 움직이는 틱 장애를 지녔다. 절친한 후배이자,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의 버릇을 반영했다. 편안할 때면 종종 나타나는 버릇이란다. 돌무치 주변에는 항상 파리가 맴도는데, 윤 감독이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연출한 설정이다.

◇ 쌍칼, 하정우의 액션
돌무치는 무쇠와 같은 몸에 장사와 같은 힘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이 설정 탓에 하정우는 돌로 머리를 맞고, 바늘로 뺨을 찔린다.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 재미있다. 특수 제작된 소품이지만 “자꾸 맞으면 아프다. 참아야지 어쩌겠냐”고 투덜댄다.
백정 출신인 돌무치는 화적떼가 된 후 도살시 사용하는 식칼을 양 손에 쥐고 무기로 사용한다. 촬영에 사용된 쌍칼은 고무와 나무, 특수 재질 등 세 종류의 것이 준비됐다. “실제론 상당히 무거웠다”고 혀를 내두른다. 정작 칼로 인한 부상은 강동원의 장검에 당했다. 검이 팔을 스쳐 파상풍 주사를 맞기도 했다.
고된 촬영이었던 만큼 고생담이 술술 나온다. 말 타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여러 마리의 말이 동시에 달리는 장면을 찍을 땐 “여기서 떨어지면 죽겠구나” 싶은 심정이었다. 허벅지에 얼마나 힘을 주고 탔는지 14시간 연속 촬영한 날 이후 2주 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다. 다들 한 번씩 말에서 떨어졌지만 다행히 그와 강동원은 낙마 사고가 없었다. 실제로 죽은 꿩을 소품으로 썼다가 부패하는 바람에 구더기에 시달렸던 일, 소품인 건어물이 상해 악취에 고통 받은 일 등 에피소드가 다양했다.
◇ 윤종빈, 하정우의 지기(知己)
하정우와 윤 감독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다. ‘용서받지 못한자’(2005)를 시작으로 벌써 10년이다.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에 이어 ‘군도’는 벌써 네 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좋아하는 음식도, 음악 취향도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은 영화다. 무엇이 좋은 영화인지, 무엇이 좋은 연기에 대한 생각이 닮아있단다. 윤 감독은 하정우가 연출하고 출연하는 영화 ‘허삼관 매혈기’에도 참여했다.
윤 감독 외에도 ‘군도’에는 ‘하정우의 친구들’이 많다. ‘범죄와의 전쟁’의 조진웅과 마동석, ‘베를린’(2012)의 이경영 등이 그러하다. 극 중 20세가 된 하정우와 22세의 마동석이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있다. 30,40대 두 남자 배우가 20대 초반이라고 ‘우길 때’, 객석에선 웃음이 나온다. 당초 시나리오에는 없던,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 배우와 감독, 하정우의 진행형 꿈
하정우는 현재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이다. 맛깔스런 ‘먹방’(먹는방송)으로 유명한 그가 극 중에서 대파를 먹었을 뿐인데, 화제다. 아버지인 중견배우 김용건은 종종 그를 보며 “기적이야”라고 외친단다. 느긋해 질만도 한데, 그는 “여전히 과정 중”이라고 한다. 스스로에게 여유 대신 과제를 내준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연출도 그 중 하나다. 두 번째 연출작 ‘허삼관 매혈기’를 촬영 중인 그는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지 못하고, 선크림 바를 틈도 없이 고군분투 중이다.
“계속 이렇게 나아가면서 꿈꾸고 바라는 것들이 하나둘씩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주변에서 가끔 정상에 올랐다고 말해주는데, 그런 생각이 언뜻 들기도 한다. (웃음)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늙을 때까지 꾸준히 활동하며 그 과정 안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다.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과 배우가 되고 싶다. 우디 앨런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말이다. 세계 영화제도 욕심난다. 동시에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즐겁게 촬영에 임하는 게 나에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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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