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글능글 웃으며 호감 있는 여성에게 술을 권하고, 그러다 먼저 취해 "그쪽은 나 싫어요?"를 외치는 이 남자. 와이너리를 가득 채운 오크통 앞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덥석 끌어안고 키스를 하는 이 남자. 로맨틱하면서도 귀여운, 영화 '산타바바라' 속 이상윤의 이야기다.
KBS 2TV '내딸 서영이'를 통해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배우 이상윤은 이후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SBS 드라마 '엔젤아이즈' 등을 통해 로맨틱한 모습을 줄곧 선보여 왔다. 이번 영화 '산타바바라'도 마찬가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눈이 휘어져라 웃어 보이고 자신과 놀아주지 않을 땐 가끔 투정도 부리는,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을 이상윤은 제 옷 입은 듯 소화해낸다.
이 때문일까. 이상윤과 연기하면 뭔가 수상쩍다. 꼭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내딸 서영이' 당시 이보영과도 웃지 못할 의심(?)을 받았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지성 선배님이 계시는데 왜!"라며 껄껄 웃은 이상윤은 그런 의심을 받는 것이 나쁘지는 않단다. 멜로 연기에 있어 주연배우들의 케미스트리(화학작용)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 실제로 이상윤은 자신과 멜로 호흡을 맞추는 여배우와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제 연기 스타일이 극 중에서 어떤 관계든 인간 대 인간으로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실제로는 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또 더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은 더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는 편이죠.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다 보니 오해할 수 있는 행동들이 발생할 수 있잖아요. 상대가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하려고 하죠. 적절하게 친분을 유지하려고 해요."
특히나 '엔젤아이즈'를 촬영하며 박신우 PD의 조언이 더욱 이상윤의 철학을 공고히 해주는 계기가 됐다. '시청자는 극 중 인물의 눈으로 상대 캐릭터를 바라본다'는 박신우 PD의 조언은 이상윤이 멜로 연기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크나큰 역할을 했단다.

"촬영을 하면서 이 사람을 내 연인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봐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특히 '엔젤아이즈' 촬영을 하면서 박신우 감독님이 이야기해주신 게 있어요. 감독님이 미팅 때 저와 구혜선 씨를 보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이제 이상윤이라는 배우를 박동주로 볼 것이고 구혜선이라는 배우를 윤수완으로 볼 거라고요. 그러니 우리 둘도 각자를 실제 그 인물로 생각하고 서로를 정말 사랑하듯 마음가짐을 가져달라고요. 시청자는 상대방의 눈으로 그 인물을 본다는 것이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였어요. 저는 그간 내 감정만을 생각했지 내 눈이 시청자의 눈이 될 거라곤 생각을 못 했었거든요. 굉장히 예리한 지적이었죠.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대 배우가 설령 극 중 인물하고 다른 느낌으로 볼 상황이 되더라도 극 중 상황에 몰입해 실제 사귀는 감정으로 봐야겠구나 말이에요."
어느덧 '로맨틱의 대명사'가 된 이상윤은 이제 로맨틱 아니면 다른 모습은 다소 상상하기 어려운 지점에까지 온 듯하다. 데뷔 시절부터 다양한 역할을 해 온 그이지만 워낙 로맨틱한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그였기에 다른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인도 이제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며 차근차근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데뷔 이후 '서울대 엘리트', '엄친아' 이미지에 갇혀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로맨틱' 이미지가 틀이 되지 않도록 다양하게 보여줄 것이란다.
"과거 '짝패'를 할 때 였나. 그때 인터뷰에서 멜로를 하고 싶다고 했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로 멜로를 하고 있죠. 남자 배우로서 살아갈 때 멜로는 필요한 부분이고 갖춰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연세가 많은 선생님도 지금은 할아버지나 회장님, 아버지 역할을 하시지만 젊으셨을 땐 멜로를 하셨거든요. 그 부분이 없으면 다양한 연기를 소화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연구하고 더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해서 멜로 이야기를 한 거죠. 그 부분에 대해 대중이 그렇게 받아준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를, 어떤 부분을 보여줄까 고민해야 하고 차근차근 나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서울대 엄친아'가 저를 규정하는 틀이었다면 '로맨티스트'가 틀이 되면 안 되니까 그다음 단계를 보여줘야겠죠(웃음)."
"이상윤의 사이코패스가 궁금해요"라는 말에 도전도 해봤단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변화를 위해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렇게 차근차근 한 계단 올라가며 여러 가지 모습에서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사이코 패스 역할 같은 경우도 연기하면 할수록, 여러 작품을 하면 할수록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문을 두드려보고 작품에서 떨어지기도 하면서요. 그런 역할에 관해 이야기가 오가면서 오디션을 본 적이 있는데 떨어졌었어요. 이후에 생각을 해봤더니 저는 내 합리성에 입각해서 생각을 했는데 나 같이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고방식으로 접근했으면 어땠겠냐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틀에 갇혀있었구나 깨달았고 그런 역할을 하더라도 다른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어야겠다 생각을 했죠. 빠르게 뭔가를 이룬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알고 차분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원하는 지점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지점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거죠. 캐스팅을 맡길 수 있는 배우 말이에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차분히 기회가 돼서 연기해나갈 수 있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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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