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외야수 이진영(34)에게 2014시즌 전반기는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다. 지난 1월 투표를 통해 우승후보 LG의 주장이 된 이진영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완장을 찼다. 이진영은 야구 실력은 물론, 야구 외적으로도 언제나 모범이 되고 후배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당시만 해도 이진영이 ‘우승팀 주장’일 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LG는 시즌 초반부터 지독한 부진에 빠졌고, 설상가상으로 감독이 자진사퇴하는 대형악재를 맞이했다. 그러면서 LG는 약 6주 이상을 표류된 상태로 보냈다. 자연히 팀 성적도 최하위로 곤두박질쳤다. 이 과정에서 이진영은 주장으로서 누구보다 고뇌했다. 팀 전체가 아픔을 극복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지난 19일 이진영에게 당시 상황, 그리고 전반기 총평과 앞으로 LG가 나가갈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이진영은 지난 4월 23일 김기태 감독이 자진사퇴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당시 LG는 대구구장에서 삼성과 원정 3연전 두 번째 경기에 임했다. 그런데 경기 전 수장 김기태 감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경기가 종료됨과 동시에 김 감독의 자진사퇴 사실이 알려졌다. LG 선수단 전체가 패닉에 빠졌고, 몇몇 선수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만일 내가 주장이 아니었다면 함께 동요하고 힘들어 했을 것이다. 물론 주장으로서 김기태 감독님을 찾아가 사퇴를 만류하고 싶은 마음도 강했다. 그러나 내가 감독님의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 봤다. 감독님은 이미 결정을 하셨다. 감독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을 다시 모시고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무엇보다 우리 성적이 안 좋아서 감독님이 떠나셨다. 우리가 못해서 감독님이 그런 결정을 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때일수록 우리 선수들이 개인행동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선수들에게 ‘우리가 정한 룰은 꼭 지키자. 밖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리고 굉장히 소란스러운데 적어도 선수단 안에서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자’고 말했다. 만일 그 시기에 또 다른 일이 터졌다면, 팀 전체가 그대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수들 모두 내가 이야기한 것을 잘 지켜주고 잘 따라와 주어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감독님이 떠나신 것은 굉장히 큰일이라 시즌이 끝날 때까지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후배들 덕에 짧은 시간에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5월 11일 양상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LG는 안정감을 찾아갔다. 양 감독 부임 후 25승 21패, 꼴찌 팀에서 순식간에 이기는 팀이 됐다.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했을 때의 모습도 조금씩 돌아왔다. 이진영 역시 타순을 가리지 않으며 타율 3할5푼 6홈런 47타점 OPS .900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덕아웃이나 그라운드 밖에서는 주장 역할에 충실, 팀 전체의 사기를 높이는데 앞장섰고 후배들에게 꾸준히 조언했다.
“양상문 감독님이 오시고 점점 팀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선수들 모두 지난해 모처럼 좋은 성적을 거둔 만큼, 올해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야구는 절대 작년 성적에 비례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팀들의 전력이 많이 보강된 게 우리 팀에는 결과적으로 안 좋게 된 것 같다. 우리가 플러스된 것보다는 다른 팀의 외국인선수, FA 선수 보강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팀워크뿐이다. 내가 나서서 우리 팀이 더 단단해지면 상대팀 전력을 이겨낼 수 있다고 봤다. 선수들에게 우리가 뭉치면 어느 팀이든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감독님께서 어려운 시기에 팀을 맡아 잘 이끌어주셨고, 결국 전반기 마지막 삼성과 경기에선 우리가 2연승을 했다. 갈수록 투수들도 잘 하고 있고 타자들도 의미 있는 경기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부진했던 선수가 잘 해주면서 이기는 경기가 늘어나고 있다. 팀이 조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어 이진영은 1월 스프링캠프부터 약 6개월 동안 주장을 하면서 느낀 고민, 그리고 자신이 정한 목표를 털어놓았다. 완장을 차고 난 직후에는 모든 것들이 혼란스러웠고, 주장 직책에 대한 부담도 컸으나, 이제는 자신만의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일단 이진영은 후배들이 자신감을 키우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나를 보고 쾌활하고 긍정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실은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항상 작은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이다. 주장을 하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홀로 마음속에 담아두고 고민하곤 했었다. 선수가 잘못을 저질러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적어도 팀 전체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그저 내 성격이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제는 시야도 넓어지고 여유도 생긴 것 같다. 지적보다는 후배들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집중하려고 한다. 어린 선수들이 선배 눈치 보느라 못했던 것이 있다면 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한다. 보통 어린 선수가 갑자기 야구를 잘하게 되면 건방져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자신감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식이라 보고 싶다. 후배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유지시켜주는 것 역시 내 역할이다. 팀이 정한 룰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어린 선수들이 하고 싶은 것은 실컷 할 수 있게 해주려 한다.”
이진영은 프로 16년차 선배 타자로서, 후배 타자들에게 마음가짐에 관한 조언도 하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타자도 매 경기 안타를 칠 수는 없다. 정확하게 쳐도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하면 타자는 덕아웃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똑같은 컨디션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도 불가능하다. 투수의 공이 수박처럼 보일 때가 있는 반면, 한 가운데로 몰린 타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부진에 빠졌을 때 어떻게 이를 대처하느냐다. 이진영은 후배들이 심리적 문제로 긴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 중이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는 안타 못치고 삼진 당하면 하루 종일 인상만 쓰고 있었다. 부진을 극복하는 노하우가 없었다. 이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안다. 예를 들어 라이너 타구가 잡혔을 때는 그냥 삼진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잘 쳤는데 안타가 안 됐다고 아쉬워하고 당시 상황을 계속 돌아보기보다는 삼진 당했으니까 다음 타석에서 안타를 쳐야겠다고 생각한다. 야구 선수는 자신만의 심리적 극복 방법이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이게 처음부터 된 것은 아니었다. SK시절 브리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브리또가 나를 잘 지도해줬다. 내가 안타 못치고 인상 쓰고 있으면 통역을 불러서 여러 가지 조언을 전했다. 브리또는 내게 ‘안타를 못 치면 오늘 치면 된다. 어제 안타 2개 치고 싶었으면 오늘 안타 4개 치면 된다. 어제 못 친 것을 오늘까지 가져온다고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하다보면 4안타 치는 날도 있고, 무안타를 기록하는 날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을 확실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하지 않고 후회만 하면 정작 경기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2004년 브리또의 이야기들이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사실 후배 중 하루라도 안타를 못 치면 크게 자책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할 것 같은 선수가 있다. 그럴 때는 한편으로는 야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해준다. 어떤 식이든 생각을 전환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타자는 투수와 맞붙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이겨야 한다. 후배들에게 자신과의 싸움서 이길 수 있는 노하우들을 꾸준히 전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진영은 전반기 마지막에 보였던 모습을 후반기에도 그대로 가져가겠다고 강조했다. 전반기동안 LG 팬들에게 실망과 스트레스를 안겼지만,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만큼 기회는 있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이진영은 시즌이 종료된 후 칭찬이든 비난이든 달게 받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앞으로 48경기가 남았다. 48경기가 짧을 수도 있고, 길수도 있다. 솔직히 포스트시즌 진출 승부를 하기에는 조금 짧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독님이 말씀하셨듯이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다보면, 다른 팀이 쉽게 볼 수 없는, 깜짝 놀랄만한 팀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후반기에는 전반기 막바지처럼 안정적인 경기를 할 것이라 본다. 분명 기회는 온다. 2군에 계신 선배님들이 올라와서 도움을 주시면 우리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고참과 어린 선수들이 조화가 돼서 한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때문에 팬들께는 조금 더 지켜봐달라고 하고 싶다. 시즌이 끝나고 순위가 정해지면, 우리가 낸 성적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만일 성적이 안 좋다면, 내년 시즌을 열심히 준비하겠다. 서둘러 내년을 준비하는 훈련에 들어가겠다. 죽도록 연습해서 내년에는 좋은 성적으로 갚아드리겠다. 그리고 만일 기적이 일어나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면, 팬 분들이 가슴 아프고 스트레스 받으신 것에 대한 보답을 한다고 생각한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 모든 평가와 비난을 당당하게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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