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김한민 감독)이 민족의 영웅을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뜨거운 작품'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위인 중 한 명인 충무공, 영화 속 이순신의 모습은 최근 큰 사랑을 받은 드라마 '정도전'의 주인공 모습과도 겹쳐있었다.
21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언론배급시사회를 갖고 첫 공개된 '명량'은 정유재란 시기의 해전으로 1597년(선조 30년)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단 12첫으로 수백척의 왜선을 무찌른 전투를 그렸다.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 전투로 그가 거북선 없이 출전해 커다란 승리를 거둔 전쟁이다.
스토리만 들어도 한국인이라면 정서적으로 가슴이 뜨끈해 질 수 밖에 없는 내용.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영화. 역사물이 갖는 장점이자 동시에 한계다.

영화는 왜군의 계략에 의해 누명을 쓴 채 파면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는 이순신의 모습으로 부터 시작한다. 가장 위대한 전투라고 불리지만, 사실 이순신은 난세에 일생 중 가장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망자들의 원혼에 슬피 우는 이순신의 모습을 보며 혹시 뤽 베송의 정신분열증 '잔다르크'처럼 뭔가 새로운 시각의 영웅물일까 기대해보았지만 그런 종류는 아니였다. 다만 판타지적인 영웅이 아니라 그의 내면과 심리를 반영하며 강인한 장수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순신도 얼마나 번뇌하는 리더였는지를.
이런 이순신은 영화 속에서 전투 영웅이라기 보다는 백성을 위한 지도자로서의 면모가 더 강한데, 얼마 전 안방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조선 건국기의 역사적 인물 정도전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순신이 왕의 명을 어기면서도 고된 몸을 이끌고 싸우러 나가는 이유는 오직 백성 때문이다. '의리는 충이고 충은 백성을 향한다'는 이순신의 소신은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무모한 외골수처럼 보이게도 한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위대한 전투는 이순신의 힘이나 군사들의 기개로만 된 것이 아니다. 들풀처럼 약하지만 강한 민초의 힘이 있기에 가능했고, 완성됐다.
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매회 안방에서 21세기 리더십에 대해 강의한 정도전과 자신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백성을 위해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이순신은 즉 위에서부터의 영웅이 아닌, 아래서부터의 지도자다. 아무래도 사극물은 현대를 반추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데 두 작품 모두 오늘날의 리더상을 제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와중에서도 '명량'이 천만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나 '정도전'과 좀 더 다른 점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때 많은 이들이 김명민에게 열광했듯 이순신이란 인물 자체의 호감도가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류승룡, 조진웅, 권율, 진구, 이정현, 박보검 등 쟁쟁한 조연들이 가득하나 멀티캐스팅 영화라기 보다는 최민식 원톱 주연에 많은 좋은 배우들이 참여한 형식이다. 특히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코믹함을 주는 이승준의 묵직한 연기 변신이 반갑다.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희망 잃은 백성.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는 상황에서 전투를 준비했던 이순신의 두려움. 왜군 장수마저도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한 이런 역사적 영웅을 연기해야 했던 최민식의 두려움이 이와 일면 비슷하지 않았을까.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최민식표 이순신이 나왔다. 당연히 최민식이니 이 정도는 해야지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연출을 맡은 김한민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에서 호랑이 CG를 떠올리며 비주얼을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으나, 가장 중요했던 명량해협 울돌목의 변화무쌍한 해류의 변화가 무리없이 잘 그려졌다. 사실 주제가 갖는 힘이 전투를 얼마만큼 사실적으로 구현해냈는가를 압도한다. 15세 관람가.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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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