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에서 등번호 10번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공식 영구결번은 11번(최동원) 하나 뿐이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번호다. 바로 '7관왕' 이대호(소프트뱅크)가 달았던 번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롯데에서는 '10번의 저주'라는 말도 있다. 2012년 당차게 10번을 달겠다고 요구한 대졸신인 송창현은 곧바로 한화로 트레이드 됐고(거기서는 이번엔 99번을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다시 10번을 고른 2013 시즌 외국인투수 스캇 리치몬드는 사이판 캠프 합류 첫 날 무릎부상을 당해 짐을 쌌다.
워낙 강한 기를 지닌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달았던 10번, 그에 걸맞게 10번을 달았던 두 명의 선수 모두 롯데에서 얼마 버티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10번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번호가 됐다. 그럼에도 작년 말 10번을 선택한 선수가 있으니 바로 하준호(25)다.

경남고를 졸업한 하준호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외야수로 활약했다. 빠른 발과 컨택능력을 갖춘 하준호는 고교무대 최고의 유망주 타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준호는 투수로 전향한 뒤 왼손으로 150km까지 뿌리게 됐고, 롯데는 2008년 신인 지명에서 하준호를 2라운드 1차에 뽑아가게 된다.
그렇지만 하준호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구속은 롯데 좌완투수 가운데 가장 빨랐지만 제구를 잡지 못했다. 한때 야수전향 이야기가 나왔지만 선수 본인이 투수에 대한 욕심이 있었고, 구단도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하준호는 1군에서 투수로 꽃피우지 못한 채 군복무를 선택했다.
2013년 팀에 복귀한 하준호는 야수 전향을 선언, 등번호 10번을 고른다. 하준호와 같이 투수에서 야수로 전향한 김응국 코치는 하준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적극 권유했고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등번호 10번도 김응국 코치가 권한 것, 당시 하준호는 "10번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부담갖지 않으려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었다.
그리고 2014년, 하준호는 퓨처스리그 48경기에서 외야수로 뛰며 타율 2할1푼1리 2홈런 12타점 5도루를 기록한다. 타율은 낮지만 안타(31개)만큼 많은 볼넷(26개) 덕분에 출루율은 3할5푼리로 준수했다. 그리고 롯데 1군 외야진의 연쇄붕괴 속에 하준호는 꿈에 그리던 1군 승격에 성공한다.
이후 하준호는 2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7일 잠실 LG전에서는 데뷔 첫 경기에서 첫 안타를 기록하더니 28일 경기는 톱타자로 선발 출전하는 파격 속에 2타수 1안타 2볼넷 1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비록 팀이 역전패를 당해 빛이 바랬지만 하준호의 활약은 분명 발군이었다.
하준호의 장기는 빠른 발이다. 투수였던 2009년 대주자로 나가 득점을 올릴 정도였다. 100m를 12초대에 끊는데, 롯데 투수 가운데서는 단연 가장 빠르고 선수단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올 정도로 주력이 좋다. 28일 경기 3회에는 1루 주자로 있다가 박준서의 2루 땅볼 때 3루까지 질주하는 주력과 판단력을 동시에 보여줬다.
구단에서는 하준호를 미래의 톱타자로 점찍어뒀다. 빠른 발에 선구안을 동시에 갖춘데다가 컨택 능력도 좋아 야수로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게다가 아직 어린 나이(만 25세)에 병역까지 마쳐 걸림돌은 없다. '낭중지추'라는 말처럼 이제 본인이 기량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일만 남았다.
cleanup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