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이 성웅 이순신 장군으로 돌아왔다. 역사상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이 그것. 단 12척의 배로 330척이 넘는 왜군을 물리친, 왜군의 사망자는 헤아릴 수 없었으나 조선은 단 한 척의 피해도 입지 않았던 완전 무결한 승리를 거둔 그 전투 말이다.
현재까지도 그 전술과 과정에 대한 기록이 분분한 명량해전의 중심엔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적장들까지도 그 이름에 경외감을 표할 만큼 위대한 장수로 남아있는 이순신 장군은 그를 연기한 최민식 말에 의하면 '완벽' 그 자체다. "사람이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순신은 완벽했다.
때문에 그러한 인물을 연기하기에 앞서, 최민식은 '절망감'이 컸다고 한다.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고, 한없이 절망스러웠단다. 이순신에 대해 제대로 알기 이전엔, 의심도 했었단다. 너무나 신격화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하니 신격화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작품을 시작하기 전, 역사책에서 배운 이순신이 전부였습니다. 이제 이 작품을 통해 저도 공부를 다시 해 본거죠. 처음엔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이를테면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군인이 최고 통수권자의 버림을 받고 죽음까지 직면했었는데 그런 열악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얼마나 원통하고 뭘 잘못 했는데 사람이면 그런 생각이 안 들겠나 싶었습니다. 너무 신격화된 게 없지 않아 있을까 싶었죠.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했고요. 그러나 알면 알아갈수록 진짜 훌륭한 인격체였습니다. 완벽한 인격체라는 사실에 놀라울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였을까. 최민식은 '명량'의 언론배급시사회가 끝난 뒤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개운하지 않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연기를 하고 촬영을 다 마치고 개봉을 앞둔 이 시점에서 개운하지 않다니. 이는 완벽한 존재 앞에서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답답함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간 연기를 하고 살아왔는데 주로 저는 어떤 허구의 스토리에 허구의 인물을 연기를 해왔었죠. 현실에 있을 법한 사람이든, 현실과 전혀 무관한 판타지든 나름대로 제 상상력에 상당 부분 의지를 했습니다. 그건 곧 대중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좌우지간 내 믿음 속에서 연기를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 작업은 달랐습니다. 제 자신이 초라해질 만큼 완벽한 인간과 맞닿으니까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싶더라고요. 허구가 아니지 않습니까. 진짜 그런 행동을 하고 말을 하고 전쟁을 심지어 또 이겨냈고. 그 사실 앞에서 절망하게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절망은 집착을 만들어냈다. 이순신을 연기해야 했던 최민식은 절망 앞에서 더더욱 이순신 장군에게 집착했다. 완벽한 장군도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모습을 최민식은 찾아내고 싶었단다. 그래서 그 모습을 찾기 위해 집착했다.
"좀 더 가깝게 다가가서 좀 더 가깝게 알고 싶었습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를 외칠 때 그 눈빛이 분명 장수의 눈빛만은 아닐 것 같았습니다.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리더로서의, 지휘관으로서의 눈빛만은 아닐 거란 생각을 했죠. 왜 그분인들 두렵지 않았겠습니다. 마음 속 흔들리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게 저는 궁금했던거죠. 어떻게해서든지 장군 이면의, 군인 이면에 흔들리는 인간에 집착을 한 것 같습니다."
그 집착은 또 강박을 만들어냈다. 찾아야 한다,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최민식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이순신 장군이었지만 꿈에 나오지 않으셨다며 아쉬워한 최민식은 죽어서라도 만나기 힘든 그 분의 뭔가를 발견해야 한다는 집착이 강박을 만들고 그것이 스트레스를 줬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그 명성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 역시 그에겐 강박이었다.

"저는 김한민 감독이 요구했던 그 수준의 이상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연기자로서의 제 과욕이죠. 감독이 A라는 수준까지 이야기를 했다면 저는 A 플러스, 플러스를 하고 싶었어요. 그건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의미도 되지만 제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컸고요. 그런 강박들이,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그런 강박들이 자꾸 스트레스를 줬습니다. 촬영이 끝난 후 씻김굿을 한 것처럼 개봉을 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을 지난 뒤, 감독님과 함께 현충사를 찾을 예정이에요. 마지막 인사를 하며 마음 속에서 놔드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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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