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뒤통수에 망치를 맞은 것 같았다. 나는 기다려서 받았던 타구들을, 맹렬하게 뛰어와 처리하더라. 다른 세상을 본 순간이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이따금씩 1991년 한일슈퍼게임을 회상하곤 한다. 한일슈퍼게임은 1990년대 한국프로야구 10주년과 한일 국교정상화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일본야구기구(NPB)가 공동 주최했던 대회다. 양국 프로야구 올스타간의 대결이 1991년을 시작으로 1995년, 1999년 세 차례 열렸다. 1991년 첫 대회에서 삼성 주전 유격수였던 류중일 감독도 출장한 바 있다.
물론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야구 기량 차이가 많이 좁혀졌다. 인프라 차이는 여전히 극심하지만, 적어도 최정예 국가대표 대결에선 한국이 일본에 쉽게 밀리지 않는다. 그러나 1991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1991년 슈퍼게임에 앞서 모두가 “한국이 1승만 해도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예상대로 일본투수들이 던지는 포크볼부터 타자들의 정교한 배팅, 민첩한 수비 등은 한국선수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차원이 다른 야구를 만났다.

시계를 약 20년 전으로 돌려놓고, LG 내야수 황목치승(29)의 수비를 봤다면, 예전 류 감독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황목치승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교시절 많은 일본프로구단에 관심을 받았던 유망주였다, 체격이 좀 더 컸고,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황목치승의 주무대는 일본프로야구였을 것이다.
어쨌든 황목치승은 우여곡절 끝에 만 29세의 나이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해 고양 원더스, 올해 6월까지 LG 신고 선수였으나 마침내 진짜 프로야구선수가 됐다. 그리고 자신의 첫 선발 출장 경기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황목치승이 1군에 올라왔을 때 LG 양상문 감독은 “공수 모두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이다. 일본 타자처럼 타격도 짧게 끊어 친다. 수비는 놀랍다. 발놀림이 정말 빠르다. 유지현 코치의 현역시절보다 빠른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이 때만해도 양 감독이 황목치승의 사기 진작을 위해 과장 아닌 과장을 하는 듯했다. 그런데 양 감독의 이야기는 사실로 드러나는 듯하다.
황목치승은 지난 2일 잠실 넥센전에 2번 타자겸 유격수로 선발 라인업에 올랐다. 전날 경기서 오지환이 등에 투구를 맞아 교체됐고, 송구에 지장이 있다는 진단과 함께 엔트리서 제외됐다. 그러자 양 감독은 앞으로 6경기 동안 오지환의 공백을 황목치승으로 메우겠다고 발표했다.
경기가 시작됐고, 황목치승은 1회말 첫 타석부터 리그 최고 좌투수 밴헤켄을 상대로 우전안타를 날렸다. 밴헤켄의 포크볼을 예측이라도 한 듯 가볍게 밀어친 게 깨끗한 안타로 연결됐다. 3회초에도 황목치승은 2사 1, 3루서 안타성 타구를 날렸으나, 우익수 이성열 정면으로 타구가 향해 아웃됐다.
타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가치는 수비에서 나왔다. 황목치승은 4회초 김민성의 불규칙 바운드 타구를 재빠르게 캐치해 2루수 박경수에게 토스, 6-4-3 더블플레이를 유도했다. 5회초에는 문우람의 중전안타가 될 수 있는 타구를 잡았고, 절묘한 풋워크로 2루 베이스를 밟은 뒤 1루 송구, 2이닝 연속 더블플레이를 기록했다. 한국 내야수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마치 비디오를 1.5배속으로 보는 듯한 빠른 스탭과 1루 송구가 군더더기 없이 이뤄졌다. 8회초 3루수 김영관이 에러를 범할 때는 엄청난 스피드로 몸을 날려 백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황목치승의 움직임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황목치승은 LG에 큰 힘이 된다. 오지환의 이탈은 공수주 모두에 있어 LG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였다. 일단 수비에서 오지환은 최경철과 함께 LG서 유이한 ‘대체불가 자원’이다. LG에서 그 누구도 오지환 만큼 넓은 수비범위와 강한 송구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최근 타격에서 부진했으나, 그래도 오지환은 팀에서 가장 도루가 많고, 가장 빠른 주자다. 이러한 부분들을 황목치승이 메운다면, LG는 오는 12일 오지환이 돌아오기 전까지 유격수·테이블세터·기동력 공백 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 프로구단 스카우트는 황목치승을 두고 “지금까지 많은 선수들이 고양을 통해 프로구단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들 중 황목치승 만큼 장점이 뚜렷하고 특별한 선수는 없었던 것 같다. 냉정히 말해 대부분의 고양 선수들은 1군과 거리가 있다. 구단에서도 1군이 아닌, 2군 전력보강을 위해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며 “고양 출신 중 1군서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은 이가 황목치승이다. LG가 고양서 진짜배기를 데려간 것 같다”고 평가했다.
황목치승은 고교시절 무릎 인대와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며 야구 유니폼을 벗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진념마저 벗을 수는 없었고 고양서 지옥훈련을 통해 부활했다. 황목치승의 인생역전이 LG 4강 기적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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