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침보라소 산의 빙하를 캐 내다파는 얼음 상인이 있다. 그는 사라져 가는 전통에 아쉬워 한다. 지구 반대편 중국 후난성에는 티안멘(天門)산의 아치형 협곡을 특수 날개옷 윙수트만으로 통과하려는 남자가 있다. 두려움 모르는 도전이 짜릿하다. 모두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내용이다.
2014 밴프산악영화제 월드투어 울주상영회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작수천 수변야영장에서 진행됐다. 산과 모험을 사랑하는 도전가들의 열정, 지구의 빛나는 자연을 담은 총 25편의 다큐멘터리가 3일에 걸쳐 야외상영장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상영기간 내내 관객들을 반긴 것은 비였다.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 첫째 날과 달리 둘째 날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어둠이 깔리며 빗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오후 8시 상영에 앞서 가수 이지연의 노래 '바람아 멈추어 다오'가 흘러나오자 누군가 '비야 멈추어 다오'로 개사해 따라 불렀다. 지난 수개월 동안 상영회에 힘써온 준비단 측에선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왔다.
폭우도 관객들과 준비단의 열정까진 막지 못했다. 야외스크린에 불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막걸리를 사들고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중년 부부, 노란 우비를 입고 엄마의 손을 잡은 꼬마, 등산복 차림에 스틱을 들고 상영관을 찾은 등산객 등 관객들은 각양각색이었다. 파라솔 아래에서 비를 피하던 사람들도 준비단 측이 나눠준 흰 우비를 입고 지붕이 없는 야외 객석에 자리했다.

다 함께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 때문일까. 그들은 함께 웃고 울었다. 윙수트를 입고 협곡을 통과하는 윙수트 플라이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천문'의 주인공 젭 콜리스가 도전에 성공하자 "브라보"란 탄성이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빗소리와 박수 소리, 영화의 사운드가 뒤섞였다. 플라이어들의 믿을 수 없는 도전에 집중하던 관객들이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열기는 오후 10시 반까지 지속됐다. 마지막 상영작인 '스파이스 걸'이 상영을 마칠 때는 총 1,000여석의 자리가 어느 정도 채워졌다. 산과 자연, 모험을 주제로 한 도서 전시회와 사진전 등이 야외에서 함께 열렸지만, 폭우 탓에 관람객을 찾긴 어려웠다. 카페의 상인은 장사를 접은 듯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 곡조 뽑았다. 우중(雨中)상영회가 됐지만, 여름비와 계곡의 안개가 어우러진 꽤 운치 있는 영화제였다.
준비단을 지휘해온 울주문화예술회관 황지애 관장은 "날씨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않나.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비를 맞아보겠냐"며 "2개의 상영관을 포함한 복합월켐센터가 올해 말 완공되면 또 달라진 모습일 것"이라며 내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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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용 사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