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쇼와 맞붙는 줄 알았다. 정말 치기 힘들더라.”
LG 양상문 감독이 넥센 좌완 선발투수 앤디 밴헤켄(35)을 향해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양 감독은 지난 2일 잠실 넥센전에서 밴헤켄의 8이닝 무실점 역투에 꽁꽁 묶이며 영봉패를 당했다. 경기 후 양 감독은 “밴헤켄 투수가 잘 던지며 리그 최고 투수임을 입증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밴헤켄에 대한 감탄을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양 감독은 “밴헤켄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기교파 투수였다. 그런데 점점 공이 빨라졌고 제구도 더 좋아졌다. 어제 경기서 밴헤켄이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겠다 싶었다”며 “LA 다저스의 커쇼와 맞붙는 줄 알았다. 정말 치기 힘들더라. 체인지업만 세 가지에 구속도 145km 이상을 찍었다. 올 시즌 밴헤켄 양현종 김광현이 리그 최고 투수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당장 페넌트레이스가 종료된다면, 투수 골든글러브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밴헤켄은 3일까지 22경기에 선발 등판해 135⅔이닝을 소화하며 15승 4패(승률 78.9%) 평균자책점 2.79 탈삼진 119개 퀄리티스타트 15회를 기록 중이다. 다승 이닝 평균자책점 퀄리티스타트 부문 리그 1위, 탈삼진 승률 부문에선 리그 2위다. 투수 WAR서도 5.12(KBreport.com 참조)로 당연히 1위다. 앞으로 7번 이상의 선발 등판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7년 만에 20승 투수가 나타나는 것도 가능하다. 밴헤켄이 20승을 거둔다면, 골든글러브를 넘어 MVP까지 노려볼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밴헤켄의 진화가 급속도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2012시즌 넥센 유니폼을 입고 한국무대를 밟았을 당시 밴헤켄은 파워피처가 아니었다. 제구가 좋고, 높은 타점에서 공을 던지는 게 장점인 컨트롤 위주의 투수였다. 실제로 패스트볼 구속 또한 지금보다 10km 정도가 느린 130km대에 머물렀다. 일부에선 밴헤켄을 두고 2010시즌 넥센에서 뛰었던 장신 좌투수 번사이드를 머릿속에 그렸다. 번사이드는 당해 넥센에서 10승을 거뒀으나 평균자책점 5.34를 기록했고, 넥센과 재계약에 실패한 바 있다.
사실 이러한 우려는 넥센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무대 첫 해 밴헤켄은 11승 8패 평균자책점 3.28로 활약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당시만 해도 밴헤켄은 방출 대기에 가까웠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2012년 스프링캠프를 돌아보며 “밴헤켄이 애리조나 캠프에서 공을 던지는데 구속이 133km가 나왔다. 코칭스태프 모두가 ‘큰일 났다’고 했었다. 2차 캠프 장소인 일본으로 옮겼는데 그 때도 구속은 135km 밖에 안 나왔다”며 “다행히 시즌에 들어가면서 캠프 때보다는 구속이 올랐지만, 그래도 지금 밴헤켄의 모습과는 차이가 컸다. 2012시즌만 하더라도 밴헤켄은 피해가는 투구를 했었다”고 말했다.
이미 서른 살을 훌쩍 넘긴 투수의 공이 빨라지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팔꿈치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후 완벽한 재활과정을 거쳤거나, 투구 메커니즘 변화가 극적으로 적중하는 경우 외에는 없다. 그런데 밴헤켄은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도, 투구 메커니즘 변화도 없이 구속이 올라갔다. 2013시즌부터 140km 이상을 꾸준히 찍더니, 올 시즌에는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40km대 중반을 이루고 있다.
이를 두고 염 감독은 휴식을 통해 밴헤켄의 구속이 올라왔다고 답을 내놓았다. 염 감독은 “한국에 오기 전 밴헤켄은 일 년 내내 공을 던졌다. 미국에서 시즌을 치른 후, 겨울에는 돈을 더 벌기 위해 중남미서 윈터리그를 뛰었다. 이렇게 7, 8년을 보냈다고 하더라”며 “처음 우리 팀에 왔을 때도 윈터리그를 마친 후였다. 이미 지친 상태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것이다. 하지만 2012시즌 이후부터 겨울에 휴식을 취했고, 그러면서 공이 점점 빨라졌다”고 밝혔다.
물론 구속 증가 하나만으로 올 시즌의 밴헤켄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염 감독은 밴헤켄이 리그 최고투수가 된 원인 세 가지를 꼽았다. 염 감독은 “일단 밴헤켄은 이미 한국타자들에 대한 분석을 마친 투수다. 로티노와 호흡을 맞추게 한 것도, 밴헤켄이 타자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밴헤켄에게 리드를 맡기면 문제가 없다고 봤다. 한국타자들을 잘 알고, 그만큼 쉽게 타자들을 잡을 줄 안다”고 첫 번째 원인을 전했다.
이어 염 감독은 “구위가 좋아지면서 공격적 투구가 가능해졌다. 올 시즌의 밴헤켄은 볼카운트 0B2S서도 바로 승부에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쉽게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다”고 두 번째 원인을 말했다. 덧붙여 염 감독은 “낮게 로케이션이 이뤄지고 있다. 밴헤켄의 구종 모두가 낮게 로케이션이 이뤄져야 효과가 있다. 밴헤켄은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가 아니다. 포크볼 계열의 공은 낮게 던져야 승부구로 쓸 수 있다. 패스트볼 또한 마찬가지고, 최근 조금씩 던지는 커브도 그렇다. 한국 심판들의 성향도 높은 볼에 비해 낮은 볼에 관대하다”며 스트라이크존 낮은 곳을 공략하고 있는 것을 세 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염 감독은 밴헤켄의 성격에도 만점을 줬다. 염 감독은 “전형적인 컨트리보이라 보면 된다. 조용하고 모범적이다. 이따금씩 밴헤켄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신사가 따로 없다”고 칭찬했다.
한편 염 감독은 올 시즌 MVP 경쟁구도가 밴헤켄과 더불어 강정호와 박병호, 팀 내 3파전이 될 확률이 높은 것과 관련해 “셋 중 누가 될지 모르겠다. 병호와 정호는 홈런도 중요하지만 타점왕을 누가 먹느냐에 따라 갈릴 듯하다. 밴헤켄은 20승을 한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에 MVP가 될 수 있지 않겠나”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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