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개봉 대기작 ‘해무’는 주연 배우 김윤석 박유천 보다 홍보 전선에 늘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영화를 제작한 봉준호 감독이다. ‘괴물’ ‘설국열차’ 등 여러 흥행작을 연출한, 구매력이 검증된 ‘봉테일’이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제작을 맡았는데 ‘한번 믿고 보시지 않겠느냐’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이 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을 것이다.
봉준호는 자신의 출세작 ‘살인의 추억’을 공동 집필한 신예 심성보를 ‘해무’ 감독으로 데뷔시키며 제작자 명함을 손에 쥐었다. 각종 시사는 물론이고 최근엔 관객과의 대화에까지 참석하며 주목 받았다. 하지만 이런 행보를 놓고 일부에선 지나친 오지랖 아니냐는 잡음이 나오고 있다. 제작자로서 후배 감독을 흐뭇하게 응시해주면 좋을 텐데, 너무 열심히 마이크를 잡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항간에 떠도는 ‘해무 괴담’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해무’ 제작비가 30억 원이나 오버 돼 투자배급사 NEW와 봉 감독이 책임 소재를 놓고 서로 얼굴을 붉혔다느니, 영화 중반부터는 아예 봉 감독이 공동 연출자로 나섰다, 최근 체중 감소와 삭발에 가까운 헤어스타일이 그간의 마음고생을 대변한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물론 투자사와 봉 감독 측은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터무니없는 3류 소설’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약속된 촬영 회차와 예산이 오버됐다면 감독에게 1차 도의적 책임이 있으며, 최종 책임은 현장 관리를 제대로 못한 제작사와 투자사가 지게 된다. 이런 경우 과거엔 제작, 투자사가 연대 책임을 졌지만 몇 년 전부터 투자사가 ‘슈퍼 갑’이 되며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투자사가 일방적으로 제작사의 수익 지분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6(투자사)대4(제작사)가 정상인 수익 배분 비율이 7대3, 심지어 8대2로 제작사에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 NEW는 ‘변호인’ 정산 당시에도 제작비가 오버됐다는 이유로 제작사 최재원 대표의 지분 10%를 취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소문의 축인 공동 연출은 관점에 따라 그 범위가 애매하지만, 현장에서 “컷, OK”를 외치지 않더라도 애초 합의된 콘티를 건드리거나 보다 나은 아이디어 제공이란 명목으로 감독 권한을 행사했다면 연출 개입으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유가 어찌됐든 봉 감독의 후배 사랑 혹은 흥행 강박, 불안함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기세가 꺾이긴 했으나 일찌감치 430만 관객을 확보한 ‘군도’에 이어 각종 신기록을 경신중인 ‘명량’의 파죽지세가 ‘해무’에겐 전혀 반가울 리 없을 것이다. 여기에 최대 복병으로 떠오른 ‘해적’의 다음 주자라는 대진표 역시 원망스러울 것이다. 가뜩이나 ‘명량’이 중장년층 관객까지 흡수하고 있는 터라 ‘해무’의 청불 등급도 흥행 면에선 불리한 과속 방지턱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만일 CGV와 롯데시네마 프로그래머들이 자사 계열 영화인 ‘명량’ ‘해적’ 위주로 상영 전략을 짠다면 ‘해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외롭고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게 많은 배급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설상가상으로 23년 만에 일찍 찾아온 추석(9월8일)도 ‘해무’ 입장에선 극복해야 할 악재다. 올 극장가 추석 연휴가 9월 첫째 주부터 시작되는데 이렇게 되면 ‘해무’는 ‘명량’ ‘해적’ 틈에서 3주 밖에 상영을 보장받지 못 하게 된다.
‘해무’가 어떻게든 조기 강판을 피하려면 적어도 첫 주 박스오피스 2위 안에 들어야 하고, 점유율도 30%를 밑돌아선 안 된다. 왜냐하면 NEW가 여전히 메가박스의 간접 지원을 받는다 해도, 투자사의 사활이 걸린 최고 성수기엔 규모 면에서 CJ, 롯데에 비해 배급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는 더 이상 온갖 경우의 수에 얽매이지 말고 김윤석 박유천 김상호 문성근 등 뛰어난 배우들의 열연에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신인 시절 봉준호는 싸이더스 쌍두마차였던 차승재 노종윤 밑에서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을 빚어냈고, 이후 청어람에서 제작한 ‘괴물’을 기획, 연출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유니크한 연출력을 과시했다. ‘괴물’로 흥행 수익을 나누는 과정에서 제작자 최용배 대표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세상은 봉 감독에게 더 관대했다.
경영에 탁월한 재주를 가진 배용준처럼 영화감독도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제작자가 돼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강제규 최동훈 김용화 김한민에 이어 윤종빈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할리우드에선 이런 풍토가 워낙 흔하다 보니 아예 뉴스거리도 안 된지 오래다.
단, 일부 대기업 투자사의 경우 국가 예산의 일부인 창투사 모태펀드를 손쉽게 가져다 쓰기 위해 유명 감독 제작자들과 손잡는데, 스타 감독들이 이런 자금 흐름의 정거장 노릇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얄팍한 이기주의를 넘어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제작자 프로듀서들을 고달프게 하는 불공정 거래이자 잔혹한 승자 독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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