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과 후년에도 이병규(31, 7번)를 4번 타자로 고정시키려 한다. 우리 팀의 4번을 맡아줄 타자는 이병규가 아닌가 싶다.”
LG 양상문 감독이 고정 4번 타자를 찾았다. 양 감독은 지난 3일 넥센과 3연전을 치르면서 이병규를 꾸준히 4번 타자로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병규가 4번 타자 출장시 성적이 좋지 않은 점(25타수 5안타 타율 .200)에 대해선 “4번 타자라는 자리가 부담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 4번 타자로 나가다보면 전광판 4번 타순에 자기 이름이 걸려있는 게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병규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다 보여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병규를 향한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리그 정상급 타자들이 즐비한 LG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긴 시간 동안 LG에서 고정 4번 타자는 보기 힘들었다. 2012시즌 초반 정성훈이 4번 타순에 고정됐으나, 시즌 중반부터 매 경기 타순이 바뀌었다. 2013시즌 중반에는 정의윤이 호조의 컨디션을 자랑하며 4번 타순까지 올라왔지만, 이후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4번 타순에서 멀어졌다. 최근 10년 동안 페타지니를 제외하면 시즌 내내 4번 타순에 이름을 올린 이가 없었다. 2008시즌 중반 LG에 합류한 페타지니는 2009시즌까지 한 시즌 반 동안 177회 4번 타자로 출장한 바 있다.

정교한 타자들은 많았지만, 홈런 타자가 없었던 게 원인이었다. 32년 프랜차이즈서 홈런왕이 전무할 정도로 LG는 좀처럼 홈런 타자와는 인연을 맺지 못해왔다. 때문에 매 경기 타자들의 컨디션과 상대 선발투수에 맞춰 타순을 새로 짜는 것을 반복했다. 올 시즌 역시 다양한 타순이 만들어졌다. 4번 타자로 이진영 정의윤 조쉬벨 정성훈 이병규(7번) 스나이더 이병규(9번) 등이 출장했다. 문제는 4번 타순 OPS .784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시즌 초 조쉬벨이 4번 타자로 대폭발했으나 5월부터 급락했고, 결국 조쉬벨은 한국을 떠났다.
어쩌면 양 감독은 예전부터 이병규를 4번 타자로 찍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양 감독은 부임 직후 “병규는 이전부터 흥미롭게 지켜봐온 타자다. 충분히 삼성 최형우와 같은 활약을 할 수 있다고 봤다”며 “LG가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한 키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잠실구장이 아닌 다른 구장을 사용했다면 훨씬 전부터 대형타자로 더 주목 받았을 것이다. 항상 한 고비를 못 넘어서 잠재력이 다 터지지 않았는데 잘 해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 감독은 이병규의 위치를 조정했다. 수비에서 1루수 미트를 벗게 했고, 타순은 클린업으로 올렸다. 이병규는 이에 곧바로 화답, 양 감독 부임 전 26경기 타율 2할4푼7리 0홈런 9타점 OPS .721에서 양 감독 부임 후 56경기 타율 3할5푼8리 11홈런 54타점 OPS 1.151을 기록했다. 순식간에 LG 최고 타자이자, 리그 최정상급 타자로 올라섰다.
이병규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외야수로 나가는 게 1루수로 나가는 것보다 훨씬 부담이 덜하다. 가끔 중견수로 나가면 수비 범위가 넓으니까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1루수보다는 낫다”며 “타격은 꾸준히 기회를 받고 있는 게 비결인 것 같다. 감독님께서 거의 전 경기를 선발 출장시켜주시니까 그만큼 편한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는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듯하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병규의 재능은 야구계의 모든 이들이 인정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4년 전 이미 두 자릿수 홈런과 타율 3할을 기록하면서 신고 선수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잦은 부상만 아니었다면, 이병규는 예전부터 LG의 중심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올 시즌 올스타전 선수단 투표서도 이병규는 웨스턴리그 외야수 부문 3위에 올랐다. 본인은 “내가 불쌍해보여서 선수들이 뽑아준 것 같다”고 농담을 던졌지만, 이병규는 선수들과 코치들로부터 좌타자 중 가장 완벽한 스윙을 가진 타자로 꼽히곤 한다.
불과 6월초까지만 해도 LG는 최하위에 박혀 있었다. 그러나 양 감독의 구상이 하나둘씩 맞아 떨어졌고, 두 달 만에 4위를 위협하는 5위까지 올라갔다. 타선은 이병규의 도약과 함께 응집력을 갖췄고, 마운드는 안정을 찾은 선발진과 양질의 불펜진으로 몰라보게 단단해졌다. 이제 36경기 남았다. 4번 타자 이병규가 대폭발을 이어간다면, LG의 4위권 진입도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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