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죽어 있었다. 지난해의 패기는 ‘더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에 눌렸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즌 막판이다. ‘잃을 것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마음가짐을 새로운 한동민(25, SK)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SK의 차세대 거포 자원으로 손꼽히는 한동민은 지난해 99경기에서 타율 2할6푼3리, 14홈런, 52타점을 기록했다. 사실상 프로 첫 시즌에 14개의 홈런을 치며 중장거리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시즌 중반 수비 도중 무릎을 다치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성적도 기대할 수 있었다. “경험이 쌓이면 20개 이상의 홈런을 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그러나 한동민은 자신감보다는 불안감과 함께 시즌을 시작했다. 어깨 재활로 팀의 전지훈련을 모두 건너뛰었다. 동료들이 플로리다와 오키나와를 오고갈 때, 한동민은 사이판에서 어깨를 돌보며 재활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다는 압박감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여기에 불의의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시범경기 때는 손가락을 다쳤고 6월 6일 문학 롯데전에서는 1루 수비 도중 불규칙 바운드에 머리를 맞는 일도 있었다.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과정에서 자신감도 떨어졌다. 지난해 한동민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윙이 나오는 타자였다. 그러나 올해 초반에는 그런 면이 사라졌다. 일단 살아나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한동민도 답답해했다. 떨어지는 변화구가 약점이라는 세간의 시선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장점인 빠른 공 대처 능력이 덩달아 죽었다.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그러나 한동민은 요새 마음을 고쳐먹었다. 스스로를 “2할2푼 타자”라고 하면서 “더 내려갈 곳도 없다”라고 각오를 다진다. 좀 더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노력했고 그 노력은 최근 빛을 발하고 있다. 2일 문학 NC전에 대타로 나와 2루타를 쳤고 한동민은 노게임이 선언된 3회 문학 NC전에서는 이재학을 상대로 장쾌한 3점포를 쳐냈다. 홈런은 비와 함께 사라졌지만 5일 목동 넥센전에서 헨리 소사를 상대로 시즌 마수걸이 홈런포를 쳐내며 위안을 삼았다.
이날 3안타를 친 한동민은 상대의 직구 승부에 거침없이 대응하며 장타를 만들어냈다. 한동민의 장점이 잘 드러난 스윙이었다. 이만수 감독도 “한동민의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다.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라고 기뻐한다. 물론 조금 늦은 감은 있다. 그러나 한동민은 SK의 미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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