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투자사, 스타 감독과 직거래 ‘그들만의 리그’인가?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8.07 08: 14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두 글자 제목과 멀티캐스팅으로 구성된 사극 장르. 올 여름 극장가 대표 영화들의 흥미로운 공통분모인데 여기에 덧보탤 옵션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유명 감독과 대기업 투자사의 합작 영화라는 사실이다.
6일 대통령까지 움직인 파죽지세의 ‘명량’은 김한민 감독의 영화사 빅스톤픽쳐스와 CJ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한 영화다. ‘군도’는 오리온 계열 쇼박스와 월광이란 영화사를 오픈한 윤종빈 감독의 합작품이었다. ‘해무’의 공동 제작사도 NEW와 (주)해무라는 유한회사로, 후자의 대표는 다름 아닌 봉준호 감독이다.
 빅4 중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해적’만이 유일하게 하리마오픽쳐스라는 기존 제작사 작품인데 따져보면 이곳도 ‘추노’ ‘7급 공무원’으로 유명한 천성일 작가가 공동 대표로 있는 회사다. 연출자는 아니지만, 스타 작가가 대기업 투자사와 공동 제작에 뛰어든 형태로 앞선 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밑그림이다.

 이 같은 스타 감독과 대기업 투자사의 협업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강제규필름이 쇼박스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공동 제작하며 대박을 터뜨린 적이 있고, 이후 윤제균 김용화 박진표 김대우 안병기 등 흥행 손맛을 본 감독들이 자신의 레이블 영화사 설립에 하나둘 가세했다. 이들 중 김용화 김대우는 자신만의 1인 영화사를 만든 반면, 강제규 윤제균 박진표 등은 다른 감독들을 기용해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 대표 감독 겸 경영자라는 차이가 있다.
 이런 흐름의 정점을 찍은 인물로는 역시 ‘도둑들’의 최동훈이 꼽힌다. 싸이더스와 영화사집에서 내공을 쌓은 그는 ‘전우치’를 마치고 프로듀서 아내와 함께 자신의 영화사 케이퍼필름을 설립했다. 당시 쇼박스와 3편 전속 계약하며 무려 15억 원이 넘는 파격적인 계약금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품마다 기획, 연출, 시나리오 집필료 등은 별도로 책정되며, 흥행 수익에 따른 제작 지분까지 보장받은 것이다.
 대기업 투자사의 감독 직거래 풍토를 본격 도입한 건 쇼박스였다. 메가박스 매각 후 극장 없이 영화 사업을 하다 보니 덩치 큰 CJ, 롯데에 열세일 수밖에 없었고,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 중 하나가 바로 스타 감독 영입이었던 것이다.
 당장 거액이 들더라도 유명 감독들을 묶어두면 안정적인 제작 환경과 편수가 보장될 뿐 아니라 주가도 관리할 수 있고, 스태프를 꾸릴 때도 표준계약서를 요구하는 영화산업노조 눈치를 안 봐도 되는 등 여러 경영상 이점이 발생한다. 쇼박스는 100% 표준계약서를 준수하는 CJ와 달리 이를 외면하고 있어 정부와 산업노조의 눈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유명 감독을 보유하면 월급과 4대 보험을 포기하더라도 그들 밑에서 스펙을 쌓겠다는 인력이 몰려들어 어렵지 않게 스태프를 꾸릴 수 있게 된다.
 이런 직거래 이면엔 감독들의 이해관계도 맞물려 있다. 담배 심부름 등 기존 제작사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을의 설움과 비애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예산의 압박에서도 비교적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다. 송사에 휘말려도 기업 법무팀의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감독 겸 제작자가 되면 자산 형성과 축적 면에서 커다란 지렛대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최동훈 부부는 ‘도둑들’ 흥행 후 100억대 건물을 매입해 많은 영화인들의 복통을 야기한 바 있다.
 물론 대기업과 감독의 동맹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 역시 존재한다. 바로 기존 제작자들이다. 이들은 감독 관리라는 자신들의 영역을 어느 순간 대기업에 빼앗겼다는 박탈감과 더불어 영화계 생태계와 질서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손님에게 잠시 아랫목을 양보했을 뿐인데 자신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며 못마땅해 하는 것이다. 이들은 수직계열화의 폐해를 막기 위해 투자와 배급, 제작에 철저하게 칸막이를 두고 있는 선진국처럼 한국도 대기업이 모든 걸 독식하는 컨베이어 벨트를 하루 빨리 멈춰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와 드라마 투자를 위해 조성된 정부의 모태펀드와 여기서 비롯된 여러 민간 벤처펀드들이 지나치게 대기업 투자사를 위해 쓰인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다양하고 참신한 영화에 효율적으로 골고루 뿌려져야 할 나랏돈이 대기업에서 베팅하듯 만드는 감독 직거래 대작 영화에 너무 많이 소비되고 있다는 쓴 소리다.
그동안 한국 영화는 정부의 모태펀드를 통해 투자가 활성화됐고, 대기업 덕분에 재무 구조와 회계가 투명해지며 비약적인 발전을 꾀한 게 사실이다. 국산 영화는 2012년부터 투자수익률이 크게 개선되기 시작했고, 작년엔 사상 처음으로 관객 2억 명 시대를 맞았으며 평균 수익률도 15.2%(영진위 집계)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그린라이트 틈새를 노려 CJ와 쇼박스 같은 영화계 슈퍼 갑들이 감독 직거래를 통해 은밀한 거래와 탐욕을 부리진 않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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