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명량'이 연일 한국영화의 흥행 신기록을 바꾸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 이순신 장군을 전면에 내세운 '명량'의 기세에 눌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조차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배트맨, 수퍼맨, 아이언맨, 엑스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 서구판 슈퍼 히어로들도 추풍낙엽처럼 날려버리는 한국형 영웅 신화의 탄생이다.
당초 '명량'은 올 여름 선보이는 한국영화 빅4 가운데 한 편으로서 흥행 여부에 의문부호가 찍혔던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와 가까운 해역이 영화의 주무대라는 점과 그로 인해 사전 마케팅을 거의 하지 못했다는 악재가 겹쳤다. 하정우-강동원 등의 초호화 캐스팅 '군도'가 7월23일 먼저 막을 올리고 '명량' 30일, 코미디 대작 '해적' 8월 6일, 스릴러 '해무' 13일의 순서다.
이렇게 제작비 100억~200억원 사이의 대작 4편이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는 건 한국영화 사상 유례없던 일이다. 그래서 2014년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의 '빅4' 흥행 대결을 놓고 영화 관계자들은 저마다 흥행 결과에 대한 예상을 내놓느라 분주했다. 흥분도 컸지만 걱정도 앞섰다.

500만 관객에도 손익분기점을 넘기 어려운 대작 네 편이 한달 새 쏟아지는 데 이를 수용할만한 관객 규모가 과연 되겠느냐는 것이다. 또 '빅4' 가운데 두셋, 아니 서너편이 제작비도 못 건지는 대형참사가 빚어지면 당분간 한국영화 대작 제작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를 했다.
특히 '군도' '명량' '해적'은 마치 미리 짠듯이 제목도 두 글자로 똑같은 사극 3편이다. 개봉 순서도 흥행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측이 강했다. '범죄와의 전쟁' 윤종빈 감독이 연출하는 '군도'가 초반 기세를 잡으면 후속 '명량'과 '해적'은 고전을 면치못할 것이란 계산이었다. '군도'는 계열 영화관이 없는 쇼박스, '명량'은 CGV 아군을 등에 업은 CJ E&M, '해적'은 아예 한 지붕 아래 롯데시네마의 투자 배급이라는 점에서 거대 배급사 간 눈치 싸움도 치열했다.
먼저 '군도'의 출발은 화려하고 경쾌했다. '군도'는 개봉 첫날인 지난 달 23일, 55만 명(이하 영화관통합전산망 집계 기준)을 끌어모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을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우뚝 섰다. 시사회 이후 관객 입소문의 호불호는 갈렸지만 강동원의 넘볼 수 없는 매력에 방점이 찍혔다. 개봉일 역대 최다관객 동원의 기록까지 세운 '군도'는 7일 만에 350만 관객 돌파에 성공, '빅4' 가운데 가장 먼저 막을 올린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듯 했다.
그렇다면 '명량'이 '군도'에 묻히는 걸까?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애국심을 다룬 김한민 감독의 '명량’은 지난 달 30일 개봉하자마자 전국에서 68만 2828명을 동원하며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로 진입했다. '군도'는 이날부터 관객이 급감한 반면에 '명량'은 극장 관객을 싹쓸이하다시피 독주 체제로 선두를 달렸다.
'명량'의 천만 돌파가 일찌감치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면서 이번에는 '해적'을 향한 동정의 눈길이 쏟아졌다. 그래도 '군도'는 '명량'보다 먼저 개봉해서 순식간에 수백만 관객을 모았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했다. 160억원 제작비 '해적'은 이순신 장군의 충파 공세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가?

8월 둘째주, '명량'은 여전히 하루 70만명 정도를 극장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매출액 점유율은 59.1%. '명량'에 눌려 숨도 쉬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해적'은 25% 이상을 유지하면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중이다. '명량'과 '해적' 두 편이 무려 84.1 매출을 나눠가졌다.
이로써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빅3'까지의 대결에서는 '군도'가 최대 피해자인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명량'의 압도적인 흥행 태풍에 눌려 '군도'의 스크린들은 너무 일찍 소리없이 사라졌지만 '해적'은 오히려 '명량'이 너무 빨리 달려준 덕분에 아주 큼직한 틈새 시장을 발견했다.
또 롯데가 '해적'의 강한 경쟁력을 확인한 이상, 어느 정도 안정된 스크린을 몰아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만약 '해적'이 '명량'에게 형편없이 밀리고 평도 나빴으면 불가능했을 지원사격이다. '군도'는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면서 '명량' 앞에 속절없이 피눈물을 흘린 것이고.
'명량'은 지난 8일 하루 동안 68만9047명을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865만8739명으로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명량'은 개봉일 최다관객에 이어 1일 최다관객, 최단시간 100만~700만 돌파에 이어 이날 800만 관객도 역대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달성했다. 볼만한 관객들 상당수가 광속의 속도로 '명량'을 관람한 덕분에 오히려 다음 개봉작들이 움직일 공간을 열어준 꼴이다.
이를 추격하는 '해적'의 열기 또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김남길-손예진을 앞세운 코미디 해양 블록버스터 '해적'은 이날 29만6994명 관객으로 2위에 올랐으며 개봉 3일만에 85만9516명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해적'은 가슴 뜨거워지고 묵직한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과 고뇌를 다룬 '명량'과 완전히 다르게 웃음 코드에 집중해 관객 배꼽을 잡게 만드는 영화다. 한국 코미디 영화 사상 처음으로 수백억원을 쏟아부어 만든 대작인데다 남녀 주연의 환상 호흡에 유해진 박철민 등 조연들의 농익은 연기가 어우러져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결국 현재까지 빅3 성적만을 놓고 본다면 '명량'>'해적'>'군도'로 흥행 순위가 매겨질 가능성이 높다. 관객의 마음과 발길에 따라 순식간에 희비가 교차하는 영화계의 흥망성쇠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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