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 "'해무'에선 그 누구도 연기를 하지 않았다" [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4.08.09 14: 24

말끔한 모습인데도 바다 냄새가 날 듯 했다. 배 위 미쳐가는 인간들 속에서 그래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버티고 있는 갑판장 호영의 모습이 겹쳤다. 지독한 여운이다.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 감독, 제작 봉준호, 13일 개봉)는 IMF 시대를 배경으로 한 때 여수 바다를 주름잡던 전진호가 감척 사업 대상이 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배를 잃을 위기에 몰린 선장 철주(김윤석)는 배와 선원들을 살리기 위해 밀항을 결심하게 되고 낡은 어선 전진호는 비밀을 안고 위험한 출항을 알린다.
배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김상호가 분한 인물은 선장 철주(김윤석)의 명령에 복종하는 갑판장 호영이다. 그를 비롯해 인정 많고 사연 많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돈과 여자가 세상에서 최고인 경구(유승목), 열등감과 욕정에 사로잡힌 창욱(이희준), 그리고 갓 뱃일을 시작한 순박한 막내 동식(박유천)까지 여섯 명의 선원이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극한의 상황을 맞자 이들은 균열하기 시작한다.

"'삶'이죠. '해무'는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평범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죠. 어느 누구도 부자가 없어요. 다 가난하고 소박해요. '해무'는 한 마디로 그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같지는 않더라도 나름 끈끈한 사이를 자랑하던 이들은 밀항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계획은 실패하고 상황은 꼬인다. 거기에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해무까지 밀려오자 사람들은 점점 미쳐간다. 안개가 짙어질수록 인간의 본성은 뚜렷해진다.
김상호는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재미있는 작품이 들어오면 으쓱으쓱 해지거든요. 원래 이런 닫힌 공간 안에서 일어라는 이야기의 작품을 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보통 대본이 아니라, 아주 잘 만든 대본이었어요. 영화는 시나리오의 고유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훨씬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철주가 배, 창욱이 여자, 동식이 사랑에 집착한다면 호영을 지배하는 것은 가족이다. 극 중 그래도 끝까지 가장 멀쩡한 사람이 호영인데 그에게는 '집에 가야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호영에게는 가족이 전부에요. 배 밖으로 나가면 끝이죠. 그래서 버틸 수가 있는거고요. 가장 심플하다고도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폭주 하지만 호영이 버티고 있는 이유이고요. 어쨌거나 견디는 거에요. 그 속 또한 무너져 멘붕 상태가 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가 없을 거예요. 하지만 가족이 곧 삶인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죠."
호영이 아닌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면 누구를 희망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잘 해서 하기 싫다고. 오히려 한 번 더 기회가 온다면 호영을 보다 더 단단하게 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해무'에서는 그 누구도 연기를 하고 있지 않아요. 그냥 다 그 사람들인거죠. 앙상블을 이루기 위해 연습을 하고 합을 맞추고 이러기보다는 저절로 시간이 쌓였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프리 단계에서 다 같이 고기잡는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배우며 알아갔죠. 그러한 쌓임 속에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생기더라고요."
특히 막내 동석 역을 맡은 박유천을 선배 연기자로서 어떻게 바라볼지도 궁금했다. 이미 다수의 작품을 통해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뗀 지 오래된 그이지만, 스크린 데뷔는 처음아닌가. 그것도 이 같은 베테랑 선배들과 함께.
"그 친구는 벌써 연기할 때 힘을 빼는 방법을 알았더라고요. 연극할 때 보통 그러거든요. 힘 빼는 데 10년이 걸린다고. 무술할 때도 그래요. 그런데 그걸 벌써 해요. 아주 영리한 배우더라고요."
바지선 선원들이 바다 위 김상호를 보고 실제 뱃사람인 줄 알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분명 어디서 보긴 본 거 같은데, 기억이 뚜렷이 안나니 뱃사람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도 브라운관-스크린을 종횡무진 활약하는 유명 배우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서운하지 않냐고 묻자 "서운은 무슨, 좋기만 하다"라며 웃어보인다.
"'해무'는 한 술 드시면 정신 없게 드시게 되는 음식 같은 영화입니다. 부담없이 가서 보세요. 관객들에게 출분한 행복을 드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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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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