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박유천, 낡은 배에서 발견한 새 보물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4.08.11 07: 33

[OSEN=윤가이의 실은 말야] 연기를 하는 박유천을 보면 참으로 영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룹 JYJ로서 무대에서도 섹시 ‘포텐’ 충만한 이 인물은 카메라 안에서는 더더욱 머리를 쓰고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는 느낌이다.
벌써 5년 전인가, 느닷없이(?) 연기를 하겠다고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턱 등장했을 때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그리고 연이어 드라마를 선보였는데 매 작품마다 다르게 커온 느낌이다. 장르도, 캐릭터도 겹치지 않았고 출연한 작품마다 시청률도 평타 이상이었다. 내로라하는 톱스타들도 흥행을 보증하지 못하는 작금의 드라마 시장에서 박유천은 썩 괜찮은 연기력과 타율을 자랑하는 ‘연기돌’이었다.
그런데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를 보면 아직도 그에게 연기돌이라는 수식어가 적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영화 속 배우 박유천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낡고 초라한 옷가지를 걸쳤지만 신기하게 세련됐다. 외형이 세련돼 이질감이 든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초라한 ‘뱃놈’이 된 그 모습을 보는데도 반감이 없고 잘 맞아떨어지게 느껴진단 소리다. 단 한 장면이라도, 단 몇 초라도 화려한 무대 조명을 맞고 선 아이돌의 모습이라거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스크린 위에서 그는 김윤석, 김상호, 이희준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전진호’에 몸을 실은 절박한 뱃놈으로 살고 있었다.

‘해무’는 선장 김윤석에만 기댄 영화도, 젊고 싱싱한 막내 박유천에게 쏠린 영화도 아니다. 영화에서는 선장 철주(김윤석)부터 갑판장 호영(김상호), 기관장 완호(문성근), 선원 창욱(이희준)과 경구(유숭목) 그리고 막내 동식(박유천)까지 모든 캐릭터들이 엷은 듯 그러나 깊은 숨을 쉬고 있다. 저마다 사연이 구구절절하고 행위의 명분이 확실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영화는 도입부터 꾸준히 다음 전개를 궁금하게 만드는 폭발적인 몰입도를 지닌다. 어느 한 장면도 군더더기라고 느껴지지 않은 타이트한 컷과 편집이 요즘 영화 치곤 길지 않은 러닝타임(111분)인데도 체감적으로 더 짧게 다가오게 만들기 때문.
이렇게 잘 짜여 흘러가는 영화 속에서 박유천은 튀지 않는다. 그러나 묵직하고 튼튼하다. 상대적으로 연기 경험이 미천한 (더구나 영화는 처음이다) 젊은 배우가 호흡을 이해하고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며 작품에 섞이는 것 자체가 신통한 일이다. 박유천은 김윤석 문성근 김상호 이희준과 같은 농익은 배우들 가운데서 완전한 동식의 모습으로 한 켠을 채웠다.
그렇지만 튀지 않고 섞이는 것만으로는 배우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상의 가치는 여운이다. 어선 그대로의 생리에 충실하던 ‘전진호’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어느새 밀항자들을 실어 나르는 밀항선이 돼버렸다. 우르르 밀항선에 오른 무리 속에서 보석 같은 홍매(한예리)를 발견한 건, 동식이 막내 뱃놈을 넘어 ‘남자’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박유천은 동물적인 감각과 센스로 천진한 청춘의 순애보를 열연했다. 동식은 절대 강자 철주와 대립하며 마지막까지 홍매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소박하고 투박한 고백도, 처절한 액션도, 도가 넘지 않으면서도 절절했다. 좋은 선배들과 함께 해서인지 전개 전반에 걸쳐 완급 조절이 탁월한 느낌이고 말미엔 감동적이고 먹먹한 여운까지 선사하며 족적을 찍었다. 
이제 고작 첫 영화다. 드라마 몇 편을 지나 처음 오른 스크린에서 박유천은 기대 이상의 호연을 보여줬다. 20대 새내기 연기자에게서 눈에 띄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하여 즐겁다. 그가 연기를 전업으로 하거나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빛이 나니 더 반갑다. 낡은 배에서 우연히 보물 상자를 찾듯, 스크린 속 박유천을 만난 건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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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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