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공간에서, 남자 여섯 명이 뿜어내는 에너지 속에서도 배우 한예리는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자칫하면 그저 남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도구로 쓰일 뻔 했던 영화 '해무'의 홍매라는 인물이 한예리를 만나면서 생동감 있게 살아난 느낌이다.
한예리 역시 여성 캐릭터가 살아나게 돼 좋단다. 기존 시나리오에서도 홍매라는 인물이 그간 다른 영화에서 봐왔던 소모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니여서 마음에 들었다는 그는 "홍매 밖에 안 보인더데요"라는 기자의 말에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시나리오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대한민국에서 연기하는 여배우로서의 바람도 함께 내비쳤다.
"'해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영화적으로도, 흥행적인 면으로도 정말 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홍매의 캐릭터가 다채롭게 그려져서 좋았어요. 한국 영화에서 간만에 나온 여성 캐릭터가 아닌가 싶어서 여배우로서는 탐나는 역할이었죠. 앞으로도 많은 시나리오가 여성 캐릭터를 담아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해무'의 홍일점, 한예리는 남자 배우들에게 밀리고 싶지 않았단다. 정확히 말하면,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다. 실제로 바다 위 떠 있는 배에서 연기를 해야하고 쏟아지는 물도 맞는 등 힘든 '해무' 촬영 동안 한예리는 자신이 민폐가 되기 싫었다고 했다. 홍일점이라면 요리조리 힘든 것들을 피해나갈 법도 한데, 그는 남자 배우들에 뒤지지 않는 체력 관리로 힘든 '해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연기를 하다보면 체력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어지면 연기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니까요. 게다가 물은 정말 추워서 체력적으로 더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나 때문에 상대방이 촬영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안 되니까 목숨과 같은 체력관리였죠(웃음). 약도 먹고 운동도 하고 삼시 세끼 밥을 잘 먹었습니다(웃음)."
한예리는 또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된 김윤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박유천'의 이름을 언급했다. 박유천이 부러웠단다. 홍일점으로 선배들의 예쁨을 독차지했을 그가 박유천이 부러웠다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남자 배우들과 부대끼며 연기를 하는 박유천이 점점 에너지를 키워나가는 것이 보였다며 그것이 부러웠다고 했다. 당시를 회상하는 한예리의 얼굴에는 치열했던 '해무'의 현장 속, 나홀로 여배우가 느껴야 했던 아쉬움이 역력했다.
"선배들과의 촬영을 통해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동식을 연기한 박유천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배들하고 밀접하게 연기를 하니까 박유천의 에너지가 커지는게 느껴졌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되게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죠. 홍매도 좋지만 나도 저렇게 선배들과 치열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 꿀 법한 멜로 연기를 한예리는 아직 해보지 않았다. 영화 '동창생'에서 최승현과의 로맨스를 형성하긴 했지만 멜로라고 할 순 없었고 멜로라고 한다면 이번 '해무'가 그나마 멜로에 가깝다. 그렇지만 스릴러 속 피어난 멜로이기에 아직 한예리의 로맨스는 대중에게 보여진 바가 없다. "한예리의 멜로가 궁금하다" 말하니 한예리 본인도 자신에게 어떤 모습이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진한 멜로를 해보고 싶다는 그의 말마따나 이제 곧 격정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한예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여배우는 진한 멜로나 정극 로맨스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멜로 연기를 해보고 싶고 그랬을때 어떤 매력이 보여질지 궁금해요. 저는 아직 제 장점을 몰라요. 장점을 빨리 알고 싶지도 않고요. 배우로서 천천히 조금씩 제 장점이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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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