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합의판정으로 한 쪽은 웃고, 다른 한 쪽은 울었다.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와 LG의 경기서 SK가 연이은 심판 합의판정 요청에 성공, 판정 번복과 함께 의미 있는 역전승을 거뒀다.
SK는 1-3으로 끌려가던 4회초 2사 1루에서 나주환의 2루 도루가 처음에는 태그아웃 판정을 받았다. 이닝이 종료됐고 LG 선수들을 자연스레 덕아웃을 향했다. 그러자 SK 이만수 감독이 서둘러 심판 합의판정을 요청, 비디오 판독 결과 세이프 판정이 내려졌다. 지난 줄 알았던 4회초가 돌아온 것이다.
곧이어 임훈도 류제국과 상대하는 과정에서 몸에 맞는 볼을 주장했다. 이번에도 이만수 감독은 심판 합의판정을 요구, 또 판정이 번복됐고 SK는 2사 1, 2루 기회를 잡았다. 이후 SK는 정상호의 좌전안타와 한동민의 우전 적시타로 리드를 잡으며 8-5로 승리했다.

이 감독은 이날 심판 합의판정 제도로 함박웃음을 지었으나. 전날에는 심판 합의판정과 관련해 아쉬움을 삼켰다. 이 감독은 12일 잠실 LG전 5회말 수비에서 상대 타자 오지환의 세이프 판정을 놓고 심판 합의판정을 요구하려 했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천천히 덕아웃에서 나와 그라운드를 향했고, 수비수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심판 합의판정 요청 규정시간인 30초를 넘겨버렸다. 중계방송 리플레이 화면에선 아웃. 결과적으로 이 감독의 늦은 대처가 아웃카운트 하나를 상대에게 내주고 말았다.
심판 합의판정은 지난 7월 22일 올 시즌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시행됐다. 감독이 요청할 경우 TV 중계화면을 통해 비디오 판독을 실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합의 판정 대상은 ① 홈런/파울에 대한 판정, ② 외야타구의 페어/파울, ③ 포스/태그플레이에서의 아웃/세이프, ④ 야수(파울팁 포함)의 포구, ⑤ 몸에 맞는 공 5가지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 부분이다. 합의판정으로 심판의 최초 판정이 번복되지 않을 경우 더 이상의 추가 요청은 불가능하며 판정이 번복될 경우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 합의 판정은 감독만이 신청할 수 있으며(부재 시 감독대행) 이닝 도중일 경우 심판 판정 후 30초 이내에 판정을 내린 심판에게 신청해야 한다. 또한 경기가 종료되는 아웃카운트와 이닝의 3번째 아웃카운트에 대해선 판정 후 10초 이내에 필드로 나와 신청해야 한다.
감독의 역할이 막중해진 가운데, 심판 합의판정을 두고 몇 차례 시행착오가 일어났다. 한 팀은 심판 합의판정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덕아웃 근처에 TV를 놨다가 제지당했다. 한 감독은 코칭스태프가 중계방송 리플레이 화면을 보기위해 그라운드서 시간을 끌다가 심판 합의판정 규정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이제는 각 팀 별로 심판 합의판정에 대한 개념이 섰지만, 후반기 1주차까지만 해도 혼돈을 빚었다.
감독별로 심판 합의파정 규정에 대한 호불호도 갈렸다. 비디오 판독을 통해 오심을 바로 잡는 데에는 모두 환영했다. 그러나 30초, 10초 시간제한에 아쉬움을 표하는 감독도 있었다. 롯데 김시진 감독은 “취지 자체가 공정성을 위한 것 아닌가. 그만큼 서로 협력해서 판단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야구장 안이든 밖이든 경기를 지켜보시는 팬들은 중계방송 리플레이를 통해 상황을 정확하게 아신다. 하지만 우리는 곧바로 이를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 심판 합의판정으로 판정이 번복될 수 있었는데 감독이 나가지 않는다면, 팬들로부터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감독에게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닝이 바뀌는 순간 10초 안에 상황을 판단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반대로 30초·10초의 여유 없이 즉각 심판 합의판정를 요청하자는 감독도 있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경우에 따라 시간제한 내에 중계방송 리플레이를 볼 수도, 못 볼 수도 있다. 결국 방송사 사정에 따라가야 한다. 리플레이 화면만 본다면 심판 합의판정 성공률은 100%가 된다”며 “차라리 감독이 곧바로 심판 합의판정을 요청하게 하는 식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다. 팬들도 시간 지연 없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고, 감독의 판단력으로 경기 흐름이 좌우되는 또 하나의 흥미요소도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영 감독의 주장대로 심판 합의판정 규정이 수정된다면, 심판 합의판정 요청 성공률도 감독을 평가하는 새로운 요소가 된다. 감독이 심판 합의판정을 위해 덕아웃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 관중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감독을 향하게 될 것이다. 심판 판정합의 성공하면 분명 팬들은 감독의 이름을 연호하고, 경기 흐름도 변하게 된다. 인플레이는 아니지만 야구의 긴장감을 한 층 높일 수 있는 순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팬들은 투수교체와 대타, 혹은 수비 변화처럼 드러나는 움직임 외에는 경기 중 감독의 역량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모든 작전이 사인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코칭스태프와 선수만 감독의 운영 능력을 정확히 느낄 수 있다. 심판 합의판정이 전적으로 감독의 의사로 이뤄진다면, 팬들도 감독의 판단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감독 입장에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으나, 팬들에게는 한국프로야구에만 있는 또 하나의 흥미요소가 생기는 것이다.
한편 한국프로야구보다 앞서 비디오 판독을 시행한 메이저리그의 경우, 합의판정 성공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애매한 상황이면 감독이 먼저 그라운드에 나가 심판진에 어필하면서 시간을 끈다. 그 사이 코칭스태프와 구단 직원은 리플레이 화면을 확인한다. 리플레이 화면을 보고 판정 번복이 가능할 경우와 가능하지 않을 경우, 각각 다르게 그라운드서 어필 중인 감독에게 사인을 전달한다. 그리고 감독은 판정 번복이 가능하다는 사인을 받았을 때에만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다. 이렇게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의 역량과 별개로 판정 번복이 이뤄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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