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봉준호의 격이 다른 초보 감독 가이드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8.14 16: 41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해무’는 60% 이상 실제 바다에서 촬영해 스태프들 사이에선 험난했던 ‘액션 재난 영화’로 통합니다. 흔들리는 바다에서 카메라 수평 맞추기부터 중장비를 옮기는 일까지 모든 게 여의치 않았을 테고, 연기자들도 멀미와 추위 때문에 하루하루 일몰과 육지가 사무치게 그리웠을 겁니다. 김윤석이 키미테를 세 개나 붙인 제작부 막내를 보고 “얘야, 넌 참 좋겠다”라며 부러워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동식 밥차는 고사하고 매 끼니도 선상에서 도시락으로 때워야 했고, 용변도 전진호 옆에 띄어놓은 커다란 바지선 끄트머리를 이용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거의 ‘체험 삶의 현장-여수편’ 무삭제판 수준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캐노피까지 날려버릴 만큼 강한 해풍을 동반한 추위였을 겁니다. 한겨울 망망대해에서 핫팩으로 체온을 지켜야 했고, 비바람 장면을 찍을 땐 한 신 끝날 때마다 50여 명의 배우들이 몸에 온수를 한 바가지씩 부으며 어금니를 부딪쳐야 했습니다.
극중 선장실에 주로 머물렀던 김윤석을 제외하고 박유천 한예리 이희준 등 주연들과 30여명의 밀항자들은 옷 안에 우비도 껴입지 못 하고 도망 갈 곳 없는 전진호에서 사투를 벌이듯 카메라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크랭크 인 후 첫 한 달은 바다를 재현한 짐벌 세트에서 밀항 장면을 찍었고 이후엔 거제와 마산, 부산 앞바다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리얼한 장면을 담았다고 합니다.

기성 감독도 엄두가 안 날 ‘해무’ 현장의 사령탑은 심성보라는 신인 연출자입니다. 봉준호와 ‘살인의 추억’을 공동 각색한 최측근이 이 살벌한 현장의 핸들을 잡은 겁니다. 누구나 예상하듯 적잖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었고 날씨마저 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마더' ‘설국열차’ 등 봉준호와 호흡을 맞춘 홍경표 촬영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 김윤석 등 든든한 우군이 여럿 있었지만, 어쩐지 심성보 감독은 촬영 초반 적잖게 의기소침했다고 합니다.
현장 콘티가 자주 바뀌고 촬영 전 약속한 예산과 회차가 오버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그를 위축되게 만들었던 걸까요. 심 감독을 거들어야 한다는 선량한 마음이었겠지만, 현장 아이디어로 포장된 몇몇 측근들의 훈수가 감독에겐 연출 침범이라는 독화살로 여겨졌을지 모릅니다. 이러다가 배가 산으로 갈지 모른다는 공포가 정점을 찍기 전 나타난 이가 바로 해결사 봉준호였습니다.
봉 감독은 촬영 한 달 후 스태프와 배우들을 모두 집합시킨 뒤 현장 질서를 어지럽힌 몇몇 인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부탁과 협조를 구했다고 합니다. 감독이 초보 운전인데 서로 배려는 못 해줄망정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상향등을 켜면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몸이 아픈 스태프에겐 며칠씩 휴가를 주는 유화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날 봉 감독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경험한 스태프와 배우들은 다시 하나가 됐고, 거제 바다 신부턴 봉준호 감독이 전진호에 승선해 초보 감독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서포트 했다고 합니다. 연출자 교체나 스태프 해고 같은 불상사 없이 환부 소독과 사후 처리까지 직접 팔을 걷어붙인 겁니다. 이때부턴 콘티 수정이나 현장 아이디어도 사라졌고 애초 설계도대로 촬영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워낙 섬세한 디렉션 덕분에 데뷔 초부터 ‘봉테일’로 불린 봉준호식 연출도 자연스럽게 심성보 감독에게 옮겨 붙어 영화에 스며들었습니다. ‘이 장면에선 이런 감정이 나와야 한다’며 매 신마다 목표 지점을 밝혔고 밀항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캐릭터를 부여한 뒤 ’당신은 치아가 네 개 보일 정도로 입을 벌리고 있어라’ ‘누워 있을 때도 팔 다리 각도를 유지해 달라’ 같은 구체적인 요구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된 촬영 틈틈이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을 때마다 심성보 감독은 대사 없는 30여 명의 밀항자 배우들에게 다가가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다”는 말을 자주 건넸다고 합니다. 본의 아니게 재촬영이나 힘든 촬영을 많이 하게 해 미안하다는 얘기를 이렇게 돌려 말한 겁니다. 멘붕 상황이 여러 번 있었음에도 언성 한번 높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해 현장에서 인기 좋았다는 심성보 감독이 데뷔작의 흥행 여부를 떠나 차기작에선 한층 현장 장악에 능한 감독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큰 외과 수술 없이 항생제와 집중 관찰만으로 ‘해무’라는 괜찮은 문제작을 세상에 내놓은 ‘명의’ 봉준호의 처방에도 거듭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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