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외국인 타자 펠릭스 피에(29)가 격분했다. 하마터면 또 퇴장당할 뻔했다. 외국인선수들과 심판들의 뿌리 깊은 갈등이 다시 한 번 표면화 된 순간이었다.
피에는 지난 14일 대전 롯데전 7회 2사 3루에서 이정민의 높은 커브에 체크 스윙했다. 3루심에게 헛스윙 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구심을 맡은 박기택 심판이 헛스윙 콜을 하며 삼진으로 정리했다. 이에 피에가 박기택 심판 앞에서 배트를 집어던지고 양 팔을 들어올리는 제스처로 판정 불만을 표출했다.
한화 김종모 수석코치가 재빨리 덕아웃에서 뛰어나와 박 심판과 피에 사이를 뜯어놓으며 일촉즉발 상황을 말렸다. 한화 코치들과 선수들이 피에를 가까스로 진정시켰고, 김종모 수석코치가 박 심판에게 양해를 구하며 상황이 정리됐다. 자칫 퇴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큰 불상사없이 넘어갔다.

공교롭게도 피에의 첫 퇴장 때에도 박기택 심판이 있었다. 피에는 지난 5월7일 잠실 LG전에서 몸쪽 낮은 공에 루킹 삼진을 당했다. 공이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진 것으로 판단한 피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트와 배팅 장갑을 거칠게 던지가 구심이었던 박 심판이 곧바로 퇴장 조치를 했다. 피에는 이튿날 판정 불복을 이유로 제재금 50만원을 부과해야 했다.
피에는 시범경기 때부터 튀는 행동으로 주목받았고, 심판들에게는 '불손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미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행동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이 곳 방식에 맞춰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시즌 개막 후에도 퇴장당한 날처럼 몇 차례 충돌이 반복돼 뿌리 깊은 갈등을 드러내보였다.
피에 뿐만이 아니다. 적잖은 외국인선수들이 심판들에게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로 2년차 된 NC 외국인 투수 찰리 쉬렉이 지난 3일 문학 SK전에서 1회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에 화가 난 나머지 육두문자를 내뱉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판정에 문제될 만한 부분이 적었고, 찰리의 돌출행동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결국 그동안 쌓인 불만 폭발이었다.
SK 외국인 투수 로스 울프도 지난 6월19일 문학 삼성전에 볼 판정으로 심판과 충돌 직전까지 가다 퇴장당했다. 이때도 SK 이만수 감독이 마치 읍소하듯 심판을 말리는 웃지 못 할 장면이 연출됐다. 물론 외국인선수들이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지만 뿌리 깊은 갈등이 내재돼 있는 탓이다. 올해 심판 판정 불만 퇴장은 4차례 있었는데 김응룡 한화 감독을 뺀 나머지 3명이 피에·울프·찰리로 외국인선수들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외국인선수들이 심판 판정에 관련해 불만이 쌓여있다.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때마다 자신들이 '용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불만이 터지는 선수들도 있지만 이런 것을 체념하는 선수들도 있다"고 했다. 외국인선수로서의 핸디캡을 감수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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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