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교체는 결과론이다. 과정이 나쁘더라도 결과가 좋을 때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19일 SK의 투수 교체는 실패였다. 불펜 전력에 대한 불안감이 강박관념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는 정수빈의 생애 첫 만루포로 이어졌다.
SK는 1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6-12로 졌다. 한국무대 데뷔 후 5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낸 선발 트래비스 밴와트를 내고도 역전패 해 타격이 더 컸다. 결국 역전의 순간이 된 6회의 과정이 아쉬웠다. SK는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있었지만 지나치게 아꼈고 이는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흐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경기 초반 득점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던 SK는 1-2로 뒤진 5회 타자들의 집중력에 상대 실책까지 등에 업고 3점을 뽑았다. 4-2 역전이었다. 하지만 6회가 문제였다. 이날 비교적 제구가 좋지 않았던 밴와트는 2사 만루의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김재호와의 풀카운트 승부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1점차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이 때 밴와트의 투구수는 107개였다. 올 시즌 평균 투구수인 105개를 넘긴 상황이었다. 여기에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좌타자 정수빈. 정수빈은 결정적인 순간 재기를 부리는 경우가 적잖은 선수고 여기에 팀 외야 수비의 중심축이다. 여기에 2회에는 동점 적시타를 때렸다. 밴와트에 대한 자신감이 있을 법했고 대타로 교체될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면 SK는 왼손 원포인트 요원인 진해수의 투입을 고려할 만했다. 그리고 실제 진해수는 몸을 풀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진해수는 투입되지 않았고 SK 벤치는 밴와트에게 한 타자를 더 맡기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불펜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점수차였고 진해수를 여기서 쓰면 경기 막판 두산 왼손을 봉쇄할 만한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SK 벤치를 고민에 빠뜨렸다. 결국 뒷문에 불안감이 있었던 SK는 밴와트를 한 번 더 믿고 갔다. 밴와트가 좀 더 던지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도 결정의 한 가지 이유였다.
하지만 밴와트는 김재호의 밀어내기 볼넷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제구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날 전반적으로 제구가 좋지 못한 상황에다 직전 타자인 김재호에 볼넷을 줘 심리적으로도 타격이 있을 법 했다. 결국 2구째 147㎞짜리 직구가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만루포로 이어지며 SK는 4-7로 역전을 당했다. 치명적 한 방이었다.
물론 진해수가 투입됐다고 해서 상황을 잘 막고 갔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수빈의 타구가 짧아 임훈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갔다면 이런 벤치의 선택은 성공적으로 귀결됐을 것이다. 모든 것은 결과론이다. 하지만 이는 SK의 험난한 남은 시즌을 상징하는 장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불펜 전력이 강하지 않은 SK는 선발 투수들이 어떻게든 많은 이닝을 잡아줘야 한다. 이는 19일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SK가 교체보다는 또 한 번 선발을 밀어붙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선발들은 투구수 100개가 넘어가면 아무래도 구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불리한 여건에서 경기에 임하고 안타나 장타를 맞을 확률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SK는 시즌 초반부터 이런 모습이 계속 이어졌다. 선발 투수들은 100개 내외의 투구수에서도 새로운 이닝을 시작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구위가 떨어져 새 이닝을 깔끔하게 막지 못하고 주자를 남겨두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경우가 적잖았다. 당연히 마운드에 오르는 불펜 투수들은 부담이 된다. 그리고 이런 위험부담은 앞으로도 계속 안고 가야 할 문제로 보인다. 울프까지 빠진 불펜이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이상 SK의 4강 싸움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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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