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윤가이의 실은 말야] 상거지가 다 됐다. 페루 여행 6일차에 접어든 뮤지션 3인방은 어느덧 현지에 꽤 적응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와 반비례로 비주얼은 퇴화했다. 분명 일주일 전 인천 공항을 출국할 때만 해도 잘 차려입진 않았어도 깔끔하고 산뜻했던 윤상과 유희열, 이적의 차림새는 이제 남루하단 수식이 어울릴 지경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얼굴에 수염이 자라고 신발에 때가 묻을수록 추억은 더 빛을 낸다.
tvN '꽃보다 청춘'이 페루 편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22일 방송된 4회에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마지막 관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여장을 푼 세 사람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쿠스코에서의 고산병을 이기고 기력을 되찾은 윤상부터 마추픽추를 직접 대면할 수 있단 사실에 잔뜩 흥분한 유희열과 이적의 하루는 즐겁고 발랄했다.
여행 6일차, 절친한 선후배 동료이긴 했지만 2014년 언젠가 이렇게 배낭여행 동반자가 될 줄을 꿈에도 몰랐던 3인방은 한층 공들여 켜켜이 우정의 탑을 쌓고 있다. 친하긴 했대도 성격이나 취향이 제각각인 고집스러운 뮤지션들은 그러나 40대란 연륜이 묻어나는 성숙한 공동체를 보여준다. 갈등하고 충돌하기보다 이해하고 포용하며 배려한다. 그림자처럼 조용히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모습은 오히려 현장의 자신들보다도 TV로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더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술을 끊기 위해 약을 먹었고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배변 활동에 어려움이 있던 윤상은, 여행 초반 숙소와 화장실 문제로 동생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젠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윤상의 응가 문제'는 갈등의 씨앗이 아니라 웃음의 소재로 승화했다. 맏형의 남모를 고통을 몰랐던 동생들은 같은 뮤지션으로서, 또 40대의 가장으로서 윤상의 짐들을 마치 제 짐처럼 들쳐 멨다. 그리곤 동생들에게 한없이 미안해하는 윤상, 맏형으로서의 책임감과 속상함은 백 마디 말보다 어느 순간 또 다른 방식의 배려로 나타난다. 3인방 사이엔 마치 빨간 실이라도 연결된 듯 절정의 '브로맨스'가 피어나고 있다.
그래서 윤상, 유희열, 이적은 이제 어딜 가든 무얼 먹든 어떻게 자든 매사가 기쁨이고 감사다. 나름대로 바빴고 치열했고 절박했던 20대, 30대의 기억이 사무치는 가운데 40대의 뮤지션들에겐 여전히 음악이 고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젠 어엿한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고민이 뼈저린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잠시나마 현실과 속세를 떨어져 벌거벗은 기분으로 친구들과 뒹구는 것, 이 페루 배낭여행은 지치고 벅찬 40대 가장이자 대한민국 정상의 뮤지션인 3인방이 오롯이 해방되는 자리다. 길거리 샌드위치나 흙먼지 묻은 닭꼬치까지도 꿀맛인 것은 그들의 일상 속에선 만나기 힘든 별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개처럼 떠돌며 여행 하는 사이, 옷은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지고 스타일도 제대로 구겼다. 대한민국에선 나름대로 방송도 타고 콘서트도 하고 패션 화보도 찍는 사람들이 페루에선 딱 거지꼴이다. 도대체 감각이 있는 건지 의심될 만큼 색깔도 패턴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사 입고 너무나 이질적인 가방을 둘러메질 않나 심지어 라마 인형까지 껴안고 다닌다. 심지어 윤상은 열흘에 가까운 여행 기간 내내 같은 옷으로 버티며 빨래 한번 안했다니, 보고만 있어도 TV 화면에서 냄새가 날 것 같다. 그래도 어떡해, 살만한데. 카메라 의식하며 모양을 내느니 페루의 풍광을 조금이라도 눈에 담는 게 급한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편안하고 좋다. 덥수룩한 머리로, 거뭇거뭇 수염이 난 얼굴로 셀카봉을 휘두르며 즐거워하는 이 남자들이란. 청춘의 낭만이란 이런 걸까.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발길을 재촉하는 3인방은 어느새 추억 보따리를 가득 채웠다. 좀 후줄근하면 어때, 이런 게 여행의 묘미고 낭만이지. 소년처럼 히죽거리는 그들의 얼굴엔 주름살보단 벅찬 환희가 담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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