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높았고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았다. 상대 타자들의 끈질긴 승부에 고전하기도 했다. 마운드 위에서는 안 풀린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 22일 대전 한화전에서 김광현(26, SK)이 딱 그랬다.
김광현은 이날 근래 들어 가장 좋지 않은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5이닝 동안 10개의 안타를 맞았고 3개의 볼넷을 내줬다. 피안타율은 무려 4할5푼5리에 이르렀다. 결국 5이닝 밖에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김광현도 이를 인정했다. 김광현은 23일 대구 삼성전을 앞두고 “올 시즌 들어 가장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고 말했다.
어깨에 약간의 담 증상이 있었다. 김광현은 “오래 쉬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건 전혀 없었는데 담 증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광현은 당초 21일 등판 예정이었다가 경기가 우천으로 밀리는 바람에 22일에 등판했는데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다. 김광현은 “21일은 상태가 정말 안 좋았다. 21일 던졌다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은 투구를 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투수가 시즌을 치르다보면 좋은 날도, 좋지 않은 날도 있다. 김광현도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매 경기 좋은 공을 던지고 싶은 것이 투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경기 내용이 안 좋으면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남다른 승부욕을 가지고 있는 김광현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이날 김광현의 실점은 어쨌든 2점이었다. 팀이 점수를 1점밖에 내지 못해 패전투수가 됐을 뿐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5이닝을 잡아냈고 2실점이라면 절대적인 수치에서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김광현의 가치는 여기 숨어있을 수도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도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능력이다. 6월 이후에는 이런 능력이 더 도드라진다. 6월 이후 11경기에서 김광현이 3점 이상의 자책점을 기록한 경기는 6월 26일 KIA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머지 경기에서는 모두 2점 이하의 자책점으로 버텼다.
이 11경기를 모두 좋은 컨디션에서 치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날도 있었겠지만 22일 한화전처럼 어려웠던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김광현은 아무리 못해 최소 5이닝 이상, 2실점 이하의 투구를 책임져 줄 수 있는 투수임이 드러나고 있다. 성준 SK 수석코치는 “잘하는 선수는 기복이 없다. 꾸준하게 경기를 끌어갈 수 있다”라며 김광현의 가치가 드러나는 기록 이상임을 칭찬했다. 분명 이런 꾸준함을 보여줄 수 있는 투수는 리그에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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