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왕공고의 비디오를 본 북산의 심정이 이랬을까. 슬로베니아의 전력을 본 유재학호가 ‘멘붕’에 빠졌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이 장도에 오른다. 대표팀은 25일 오후 11시 30분 농구월드컵 출전을 위해 스페인으로 출국한다. 한국(31위)은 앙골라(15위), 호주(9위), 슬로베니아(13위), 리투아니아(4위), 멕시코(24위, 이상 FIBA랭킹)와 함께 D조에 속해 있다. 우리에게 만만한 팀은 한 팀도 없다. 한국은 오는 30일 앙골라를 상대로 월드컵 첫 승에 도전한다.
최종점검을 하고 있는 대표팀을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유재학 감독은 코칭스태프들과 상대팀에 대한 전력분석을 한 뒤 선수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줬다. 그나마 해볼 만한 앙골라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대표팀 맏형 김주성은 “앙골라 비디오를 봤다. 아프리카 선수들이라 말랐을 줄 알았는데 덩치도 크고 키도 컸다. 조직적인 농구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유재학호는 앙골라전에 올인해야 한다. 우리보다 세지만 한 번 부딪쳐볼만한 상대인 것은 분명하다. 첫 경기서 이겨야 상승세를 탈 수 있다. 만약 앙골라에게 대패를 당한다면 나머지 월드컵 경기는 물론 아시안게임까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김주성은 “준비한대로 하면 1승 이상을 할 수 있지 않겠나”며 침착했다. 유재학 감독은 “앙골라가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월등하다. 그래도 끝까지 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준비는 거의 다했다”며 은근히 자신감을 내비쳤다.
유재학 감독이 걱정한 팀은 따로 있었다. 바로 슬로베니아였다. 선수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줬다가 괜히 자신감만 떨어지는 역효과가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붙어 볼 상대를 분석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 감독은 고심 끝에 비디오를 보여줬다고.
6년 전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슬로베니아와 붙어봤던 김주성은 “슬로베니아가 조직력과 힘, 볼 핸들링까지 밸런스가 정말 좋더라. 특히 고란 드라기치는 정말 빠르더라. ‘저걸 어떻게 막을까’하는 생각이 드니까 솔직히 ‘멘붕’이 왔다. 2008년도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김주성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세계농구의 수준은 하나의 벽으로 다가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슬로베니아와 붙어 76-88로 아쉽게 패했다. 당시 김주성은 21점을 올렸다. 정영삼(18점, 3어시스트), 김민수(14점)도 활약이 좋았다. 라쇼 네스테로비치는 26점, 9리바운드로 한국골밑을 점령했다. 고란 드라기치는 11점,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당시만 해도 드라기치는 피닉스 선즈에서 스티브 내쉬의 백업가드로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었다. 현재 그는 NBA 최정상급 가드로 성장했다.
2010년 필라델피아에서 NBA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네스테로비치를 만나 한국대표팀에 대한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 대해 묻자 그는 “사실 한국에 대해 스카우팅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냥 경기에 임했다”며 “한국이 생각보다 기술이 좋았고, 특히 슈팅이 대단히 정확해서 감독에게 엄청 혼이 났던 기억이 난다. 작은 선수 한 명에게 득점을 많이 허용했었다”고 말했다. 네스테로비치가 지목한 선수는 18점을 올렸던 정영삼이었다.
이제 유재학호에서는 정영삼의 역할을 김선형이 해줘야 한다. 평소 NBA를 즐겨 보는 김선형은 “드라기치가 워낙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한 번 상대해보고 싶다. 얻는 것이 많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과연 유재학의 전사들은 세계농구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까. 농구월드컵 개막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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