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돌이 ‘해적’은 어떻게 험난한 회오리를 건넜을까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4.08.25 07: 32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코미디 영화 ‘해적’이 경이로운 흥행작 ‘명량’을 상대로 한 주말 3연전을 모두 이기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해적’은 지난 22일 1만 차이로 ‘명량’을 앞서나가기 시작하더니 23~24일에도 격차를 벌리며 누계 592만 명을 끌어 모으는 뒷심을 발휘했다. 혹자는 이 같은 ‘해적’의 예상 밖 흥행에 대해 롯데의 하드웨어가 작동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롯데가 극장 체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통망이 없는 ‘군도’나 ‘해무’ 보다 월등한 성적표를 받을 수 있었단 얘기다.
 
하지만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오히려 롯데시네마가 CJ ‘명량’에 더 우호적인 배급 정책을 펼쳐 억울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며 푸념한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앓는’ 소리로 들린다. 롯데엔터와 시네마 직원들의 인사고과 평가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두 회사 대표가 같다는 점에선 쉽게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여름 방학 같은 빅 시즌 초반엔 CGV가 직간접적으로 ‘명량’을 지원 사격하고, 롯데시네마가 ‘해적’을 밀어주는 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현실이다. 이윤 추구가 미덕인 기업 입장에서 이런 시너지가 없다면 굳이 수직계열화라는 비판을 자초하면서까지 극장을 짓고, 영화에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간과할 수 없는 함정이 하나 있다. 계열사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임계점이 상시 존재한다는 점이다.
 
만약 ‘해적’이 관객에게 양질의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 했다면 자사 극장에서 아무리 큰 상영관을 내준다 해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일 것이다. 보통 좌석점유율 20%를 밑돌면 인건비와 에어컨, 전기세도 못 건진다고 하는데 그래서 극장 점장과 프로그래머들은 이 수치를 수시로 살피며 하루에도 여러 번 상영작 간판을 바꿔단다. 철저하게 매출과 영업 실적으로 평가받는 극장 직원들이 같은 배지를 달고 있어도 엔터쪽 직원들과 종종 부딪치는 배경이다.
 
‘해적’도 상영 초반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 못 했다. 거의 모든 롯데시네마에서 프라임 시간대를 주름 잡은 프로는 ‘명량’이었기 때문이다. 극장 입장에서야 손님 몰리는 ‘명량’을 틀어주며 상반기 적자를 털어내는 게 지극히 당연한 합리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옆집 ‘해적’도 잘 돼야 하지만 일단 우리부터 살고 봐야 한다는 냉정한 기업 논리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게 ‘해적’에게 좋은 회초리가 됐다. ‘해적’은 중소 상영관에서 높은 좌석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입소문도 좋게 번졌다.
 
지난 주말 오후 왕십리CGV도 이런 모습을 반영하고 있었다. 입장료가 비싼 아이맥스 관에선 ‘명량’이, 중소 상영관에선 ‘해적’이 각각 상영됐다. 둘 다 앞줄을 빼고 거의 매진에 가까운 뒷심이었다. 차이점이라면 ‘명량’엔 점잖은 어르신들이, ‘해적’엔 초등학생과 20대들이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구르지마의 목이 베이자 “어이쿠”하는 중년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나왔고, ‘해적’에선 유해진이 줄을 끊고, 고래와 날치를 설명할 때마다 집단 폭소가 터졌다.
 
이제 개봉 5주, 4주차에 접어든 ‘명량’과 ‘해적’은 추석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중요한 승부처를 맞게 됐다. ‘명량’은 체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개학 후 단체 관람과 중복 관람 수요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1800만 돌파를 꾀할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한 번 더 ‘명량’을 보려는 20~30대와 주부들의 조조 수요가 있다는 점에서 난공불락 고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롯데 역시 ‘타짜-신의 손’이 청불 등급을 받은 만큼 9월 말까지 ‘해적’ 상영관을 일부 열어둘 것으로 보인다. 이 추세라면 750만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작년 8월 중순부터 9월 첫 주까지 보름간 극장을 찾은 총 관객 수는 약 1000만 명이었다.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가 휩쓸고 간 뒤 8월 14일 개봉한 숨바꼭질’이 복병으로 나타나 짭짤한 재미를 본 게 딱 1년 전이다. 올해는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는 만큼 ‘명량’과 ‘해적’이 각사의 다음 라인업인 ‘두근두근 내 인생’ ‘타짜2’가 개봉하는 9월 3일까지 관객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약체로 평가받은 꾀돌이 ‘해적’이 장르에 충실한 영화의 힘으로 올 여름 회심의 어퍼컷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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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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