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은 조용하고 진지했다. 20대의 들뜬 패기보다는 진중한 내면이 더 돋보이는 흔치 않은 캐릭터이기도 했다. 작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 박정민은 그러했다.
SBS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서 귀여운 남자 지국이었던 그는 사실 영화판에서는 심오한 캐릭터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영화 '파수꾼', '들개' 등이 눈에 띈다. 그런 그가 스크린에서 브라운관으로 옮겨와 대중을 보다 가까이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시놉시스를 꽤 오래 전에 봤었어요.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지국 역할 괜찮겠다' 싶었죠. 그런데 '이렇게 큰 역할을 내가 할 수 있겠어'하고 다시 덮어놨었던 시놉시스예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오디션을 보러갔는데, 지국 역할이더라고요. 오디션을 보긴 봤는데, 못 봤죠. 절망감에 빠져 있던 때 감독님이 믿어주셨어요. 대본 리딩 전날 저를 기용해 주셨거든요."

그는 차승원, 이승기, 고아라, 안재현의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캐스팅됐다. 물론 그를 믿어준 유인식 감독의 공이 컸다.
"제 전작들을 살펴보셨던 것 같아요. 오디션을 참 못 봤었는데(웃음). '네가 마음에 든다'고 하시더군요."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지국이 된 박정민에 다소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주로 강렬한 역할을 많이 맡았었던 그가 말랑말랑한 지국으로 갑자기 변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 혹자는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봤다'고 할 정도니, 이를 연기하는 박정민도 어렵기만 한 연기 변신이었다.
"저를 못 알아보셨다는 분도 계시다고요? 좋게 말하면 연기 변신이고, 안 좋게 말하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겠네요. 기본적으로 연기할 때 자기 복제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새로운 걸 많이 만들어보려고 시도하죠. 지국이 되기 위해서 목소리도 바꿔보고 걸음걸이도 바꿨어요. 물론 중간에 이게 정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 설정에 신경쓰다 보니 지국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히 캐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드라마 중간 이 같은 방황(?)의 시기, 박정민을 도운 이는 선배 성지루였다. 성지루의 조언은 잠시 잠깐 흔들렸던 박정민의 연기를 다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성지루 선배님은 '상대방을 위해 연기하라'고 하셨거든요. 지국이라는 인물과 제가 공통점이 없어서 그걸 만들어낸다고 상대방의 연기에 크게 신경을 못 쓰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는 '너희들은 포위됐다'에서 흔히 말하는 '남남케미'의 주인공이었다. 등장인물 중 여자 배우는 고아라, 오윤아 두 사람이고, 이 두 사람 모두 정해진 짝이 있었기에 그는 안재현과의 케미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조차 박정민에겐 신기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좋았고 신기했었어요. 내가 브로맨스? 이런 생각이요. 오히려 남자와 연기하니까 편하기도 했고요. 친해져서 대본보다 더 갔던 내용도 있었어요. (안)재현이 정말 잘 생기고 예쁘잖아요. 재현인 하얗고 저는 까마니까 제가 안재현의 반사판이 된 거죠(웃음).
안재현의 대해 더 묻기 위해 "도도해보인다" 등 약간의 모함(?)을 덧붙였더니, 박정민은 곧바로 이에 반격했다. 모델 출신이라는 선입견에 싸인 그의 친구가 사실은 진심으로 연기하는 배우라는 게 박정민의 설명이었다.
"재현이는 경험이 많이 없어요. 저도 사실 경험이 많지 않아 처지가 비슷한 파트너였죠. 그래서 서로 의지하며 재밌게 했었어요. 재현이는 진심으로 연기해요. 순수하고 착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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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