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성적이 좋으면 모든 것을 얻고, 성적이 나쁘면 많은 것을 잃는다. 매일 자신의 성적이 기록되는 프로야구 선수는 더 그렇다. 플레이 하나하나가 고과에 적용되며 그날 활약하면 영웅이, 부진하면 역적이 된다.
야수에게 가장 직관적인 평가 기준은 타율이다. 타율이 표시되지 않는 경기장 전광판은 없다. 중계방송에선 이름 옆에 타율이 자리하고 있다. ‘야수 능력=타율’ 공식이 성립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타율도 여러 가지 평가 기준 중 하나 일 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야수는 경기 중 타석에 있는 시간보다 수비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타격은 30%를 바라보고 임하지만, 수비는 100%를 노리고 들어간다. 수비 능력이 명확히 드러나는 지표가 없을 뿐, 야수에게 수비력은 타격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LG 내야수 박경수는 올 시즌 타율 1할9푼1리를 기록 중이다. 시즌 평균 타율이 2할9푼2리에 육박하는 타고투저 시대에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고 있다. 그래서 비난 받는다. 선발라인업에 박경수의 이름이 올라있는 것만으로도 박경수와 코칭스태프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LG의 팀 사정을 정확히 파악했다면, 과연 이러한 비난이 정당한 게 맞나 싶다. LG는 대량득점으로 이기는 팀이 아니다. 투수력과 수비력으로 최소실점해 승리를 따내는 팀이다. 팀에 좋은 타자보다 좋은 투수가 많다. 팀 평균자책점 4.71로 리그 3위, 팀 볼넷 346개로 리그 최소 2위, 피OPS .758로 리그 1위에 올라있다. 반면 팀 타율 2할7푼8리로 9위, 팀 OPS .759로 9위, 경기당 4.67득점으로 8위다. 즉, LG의 승리공식은 투수가 상대 타선을 압도하고, 야수들이 안정된 수비력으로 투수의 뒤를 든든히 받쳐줄 때 성립된다.
박경수가 꾸준히 출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경수는 손주인을 제외하면 LG 2루수 중 가장 안정된 수비력을 자랑한다. LG 유지현 수비코치는 “경수가 2루에 있을 때 내야 전체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용의나 치승이 모두 2루가 아직 낯설기 때문에 작은 부분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나오곤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경험 풋워크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에 있어 박경수가 김용의와 황목치승보다 낫다.
만일 3루수 조쉬벨이 4월의 폭발력을 유지했거나, 조쉬벨 퇴출 후 김용의가 3루수로 안정감을 보였다면, 손주인이 여전히 2루를 지켰을 것이다. 하지만 조쉬벨은 떠났고, 김용의의 부진으로 LG 3루는 구멍이 났다. 다행히 마지막 옵션이었던 손주인의 3루 전향이 극적으로 성공하며 3루 구멍을 메웠다. 손주인이 떠난 2루는 박경수가 주로 책임지고 있다. LG 양상문 감독은 “주인이가 3루서 분투해주고, 경수가 2루서 안정감을 보이는 게 우리 팀 전체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조합이 우리에게는 최선이다”고 내야진 수비력에 만족을 표했다.
비록 1할대 타율에 머물러있으나, 박경수는 타율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좋은 타자다. 야수 정면으로 가는 타구가 많고, 작전시 상대 호수비에 걸려 범타로 물러나는 모습도 더러 있었다. LG 코칭스태프는 박경수의 스윙궤적이 좌투수를 상대로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좌투수 상대 타율(0.224)이 우투수 상대 타율(0.133)보다 약 1할이 높다. 김용의의 좌투수 상대 타율이 1할7푼9리인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상대팀이 좌투수를 선발 등판시킬 때는 박경수가 선발라인업에 올라가는 게 맞다.
박경수는 “작은 부분이라도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경기를 준비하고 그라운드를 밟는다. 주루플레이나 수비도 못한다면, 내가 1군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비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매 경기 안타를 터뜨릴 수는 없어도, 투수의 뒤를 굳건히 지키고, 거침없는 주루플레이로 보탬이 되려 다짐 중이다. 경우에 따라선 포수마스크를 써서라도 팀을 위해 희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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