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관은 유쾌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유희왕’ 이라는 별명도 이러한 성격과 관련이 있다.
지난 4월은 유희관의 유쾌한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당시 5경기에서 3승 무패, 평균자책점 2.04로 시원시원한 투구를 펼친 유희관은 리그 월간 MVP에 올랐다. 더스틴 니퍼트가 시즌 초반 주춤하는 동안 유희관은 팀의 실질적 에이스였고, 마운드에 없을 때도 유희관은 뛰어난 언변으로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랬던 유희관이 5월부터는 극심하게 흔들렸다. 5월부터 7월까지 유희관은 매월 6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었다. 시즌 평균자책점도 5점대까지 치솟았고, 최고 구속이 130km대 중반에 그치는 유희관이 극복하기 힘든 난관을 맞이했다는 분석도 많았다.

하지만 팀이 어려워진 8월에 유희관은 다시 극적으로 살아났다. 유희관은 8월 5경기에서 4월과 마찬가지로 3승 무패를 해냈다. 평균자책점은 1.86으로 4월보다 좋다. 달라진 점은 말수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시즌 중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아픔을 겪은 뒤 유희관은 성숙해졌다. 패하기 전까지 자르지 않겠다고 했던 수염은 어느덧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길게 자랐다.
지난 29일 잠실 삼성전에서 6이닝 8피안타 1실점 호투한 유희관은 팀이 2-1 강우콜드 승을 거둬 생애 첫 완투와 함께 시즌 10승(7패)에 성공했다. 이는 베어스 토종 좌완투수 최초의 2년 연속 10승 기록이다. 유희관이 두산의 역사를 대표하는 좌완투수가 된 것이다.
2년 연속으로 10승을 거둔 소감을 묻자 유희관은 “너무 좋다. 안 좋다면 거짓말이다”라고 말한 뒤 “이번 시즌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라며 지금까지의 시즌을 돌아봤다.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중 2개월은 리그 최고 투수였고, 나머지 3개월은 평균 이하의 투수였으니 그 이상 좋은 비유가 없었다.
팀의 2선발인 유희관이 4월의 위용을 되찾은 두산은 막강한 원투펀치를 다시 보유하게 됐다. 전반기에 평균자책점 4.35로 부진했던 니퍼트는 후반기 평균자책점 2.51의 에이스로 돌아왔다. 니퍼트-유희관으로 이어지는 두산의 원투펀치는 최근 페이스를 감안하면 4강 경쟁 중인 팀들의 원투펀치 가운데 가장 경쟁력이 있다.
유희관은 4월의 영광을 되찾았지만, 마음가짐은 그때와 다르다. 진중함과 비장함이 유희관을 채우고 있다. 유희관은 2년 연속 10승에도 “좋은 것은 오늘 일이고, 내일부터는 다시 다음 경기만 생각하겠다. 무엇보다 팀의 4강만 신경 쓰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아직도 원투펀치를 제외한 선발진에는 물음표가 붙어 있지만, 최근 등판에서 7⅔이닝 1실점 호투한 유네스키 마야까지 흐름을 탄다면 두산은 강력한 3선발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선발진이 안정되면 불펜 부담도 가벼워지는 마운드의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 이를 바탕으로 투타의 조화가 이뤄진다면 유희관이 탄 롤러코스터의 마지막 코스는 4강으로 연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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