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2’ 뛰어난 셰프는 프라이팬을 나무라지 않는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8.30 07: 45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3중 세라믹 코팅된 독일 명품 냄비로 기껏 라면을 끓여내는 주방장이 있는 반면, 찌그러진 양은 냄비로도 먹음직한 양송이 수프를 만들어내는 셰프가 있게 마련이다. 내공 있는 셰프는 섣불리 프라이팬이나 환풍구를 탓하지 않는 법이다.
 열악한 주방 기구나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그의 절대 미각과 손놀림은 드러나게 돼있고, ‘과속스캔들’ ‘써니’에 이어 3년 만에 세 번째 링에 오르는 강형철은 이런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범죄 오락 영화의 미덕을 두루 갖춘 ‘타짜: 신의 손’을 통해서다.
전작이 워낙 흠잡을 데 없는 수작이었던 터라 많은 이들은 제 아무리 강형철 할아버지라도 최동훈을 뛰어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보따리 매듭을 푼 ‘타짜2’는 7권짜리 원작 만화의 ‘쪼는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강형철 스타일을 잘 구현해낸 범작 이상이었다. 대중의 기호와 입맛을 위해 최소한의 MSG를 넣었지만,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국물 맛을 유지하는 건 웬만한 실력과 자신만의 레시피가 있을 때 가능한 얘기다.

쫓기는 고니를 대신해 고니 누나 부부의 중국집을 찾아 수십억 돈다발을 건네는 노름판 터진 입 고광렬(유해진)의 설레발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뜸들일 거 뭐있냐는 식의 전작 기시감을 끌어다 쓴 영리한 스타트였다. 바지에 쏟은 짬뽕 국물 때문에 스타일을 구긴 고광렬은 엉거주춤 옷을 갈아입으며 고니의 조카 대길과 마주하고 예사롭지 않은 운명의 실타래를 직감하게 된다.
노력파 ‘후천적 타짜’인 삼촌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짱깨’ 철가방 대길(최승현)은 어릴 때부터 딱지치기로 동네를 평정하더니 급기야 당구장 화투판에 앉게 된다. 하지만 악취 풍기는 세상과 돈은 초심자의 행운을 믿었던 그에게 호의적일 리 없고, 온갖 쓴 맛을 본 대길은 한 눈에 반한 미나(신세경)에게 어설프게 청혼한 뒤 쫓기듯 고향을 등지게 된다.
고광렬에게 손기술과 독심술까지 전수받은 대길은 전국을 무대로 원정 사기도박에 가담하고 이 과정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짜릿함과 추락을 몇 차례 반복한다. 추레한 지하방 벽지에 삐뚤빼뚤 적힌 ‘내년엔 타워팰리스’라는 낙서는 대길과 관객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대감을 제공하고 대길이 판돈을 거머쥘 땐 쾌감이, 믿었던 동료에게 뒤통수를 맞을 땐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온다. 조수석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택시 기사와 동패가 되는 심리를 감독은 지능적으로 구사한다.
사실 아무리 캐릭터 무비라 해도 극장을 나온 뒤 한 두 인물의 잔상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은 법인데 ‘타짜2’는 주인공 대길부터 심지어 몇 장면 밖에 안 나온 유령(김준호), 짜리(이동휘)까지 열 명에 가까운 등장인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각 캐릭터의 임팩트와 임무, 또 거기에 맞는 분량 등을 최적화해 안배한 ‘계량컵’ 연출 덕분이다. 김군으로 나온 조연이 덩치들을 상대로 LED 광고판을 배경으로 벌인 다찌마와리 신도 시선을 압도했다. 도구 과목 잘 하는 아이들이 역시 암기 과목에도 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타짜2’의 최고 수확은 단연 최승현이다. ‘포화 속으로’ ‘동창생’을 통해 눈썰미 있는 몇몇 감독들이 탐내던 연기자에서 이 작품으로 모든 감독들이 원하는 배우로 거듭날 만큼 호연을 펼쳤다. 이경영 김윤석 유해진 같은 기라성 같은 선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고, 발음과 대사전달, 표정, 내면 연기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후반부 ‘100억 스트립쇼’를 보여준 신세경도 모처럼 부진을 털어내고 제몫을 해냈다. 사기와 음모, 배신이 똬리 튼 이 느와르에서 유일하게 뒤통수를 치지 않는 인물이자 대길의 뮤즈로 등장해 끝까지 긴장감을 높였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그늘이 느껴지는 마스크가 오히려 이 영화에선 잘 부각됐다는 인상이다. 이에 비해 팜므파탈 우사장으로 분한 이하늬는 매력적인 인물임에도 아직은 연기가 의욕을 앞서지 못 한 것 같아 아쉬웠다. 8년 전 남자들을 쥐락펴락하며 도박판을 설계한 ‘이대 나온 여자’ 김혜수가 여러 번 그리웠다.
‘해적’을 통해 한국 영화의 소금 같은 존재로 재 부각된 유해진은 ‘타짜2’에서도 능수능란하게 치고 빠지며 관객을 들썩이게 한다. 어설픈 동네 카센터 초짜들에게 일부러 당해주는 척하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도박판의 하이에나 답십리 똥식이로 출연한 곽도원은 악역 연기에도 여러 버전과 결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고, 아귀로 특별출연한 김윤석 역시 후반 30분 영화의 묵직한 중량감을 책임졌다.
테이블에 수북이 쌓인 신사임당 다발과 수십억 원어치의 칩을 보다보면 저절로 침이 고이며 근로 의욕이 감퇴되지만, 감독은 일해서 버는 돈이 가장 떳떳하고 오래간다고 경고한다. 오죽하면 ‘어이, 젊은이 일해서 돈 벌 생각해’라는 대사가 죽비처럼 등장할까. ‘때론 한 끗이 장땡을 이길 수도 있다’는 고광렬의 대사 역시 맥을 같이 한다. 청불이며 9월 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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