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참패의 교훈...개인기 없는 가드는 퇴보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4.09.05 16: 30

농구는 신장이 크게 좌우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키가 전부는 아니었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이 2014 스페인 농구월드컵에서 5전 전패를 당했다. 한국은 첫 승 제물로 삼았던 앙골라와의 1차전에서 69-80으로 패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호주, 슬로베니아, 리투아니아 등 강호들과의 전력 차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멕시코 마저 NBA센터 구스타보 아욘을 빼고도 한국을 16점 차로 농락했다.
보통 세계무대에 나가면 빅맨들의 높이에서 가장 큰 차이를 느낀다. 이번에도 높이는 전 포지션에서 열세였다. 그나마 8.8점으로 선전했다는 김종규의 평균 리바운드가 2.2개에 불과했다. 이종현은 6.8점, 3.4리바운드, 2.6블록슛(예선 1위)으로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보였다.

골밑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드진이었다. 양동근(5.2점, 1.2어시스트), 김태술(1.8점, 1.4어시스트), 박찬희(1.8점, 1.6어시스트) 등은 자신보다 15cm 이상 큰 상대를 맞아 공수에서 모두 허점을 노출했다. 프로농구 최고가드인 이들도 세계적 선수들을 상대로 너무나 무기력했다. 국내서 장신가드로 통하는 박찬희는 세계무대서 오히려 작은 키였다. 신장의 우위를 무기로 삼았던 그가 체격에서 밀리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국농구는 ‘가드는 패스를 먼저 하는 선수’라는 인식이 강하다. 가드는 자신의 찬스보다 동료를 먼저 챙기고, 슛을 아끼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슛은 전문적인 외곽슈터의 전유물처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90년대까지의 정통 포지션의 구분은 이미 깨진지 오래다. 세계농구는 특정포지션으로 역할을 구분할 수 없는 포지션 파괴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센터들도 기회만 있으면 드리블을 하고 3점슛을 척척 꽂는 시대다.
한국을 상대로 17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했던 호주의 가드 조 잉글스는 203cm의 장신이다.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잉글스는 현재 NBA 8개 구단의 구애를 받고 있다. 볼핸들링과 패스에서 우리를 압도했던 매튜 델라베도바 역시 193cm의 포인트가드다. 그는 다음 시즌 르브론 제임스와 호흡을 맞춘다. 키가 크면 스피드가 느리고 슛이 없을 것이란 편견은 이들에게 해당사항이 없었다. 이들은 180cm의 한국 가드들보다 더 빨랐고 완벽한 개인기를 자랑했다.
한국 지도자들은 한 선수가 개인능력으로 득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 드리블을 치고 올라가는 슛은 들어가도 욕을 먹는다. 가드가 골밑돌파를 하는 것도 무모하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한국 선수들은 애초에 시도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다. 김선형 역시 국내에서 지도자들에게 저평가를 받고 있다. 무리한 시도를 많이 해서 경기를 해친다는 시선이다.
한국전에서 22점, 4어시스트를 기록한 고란 드리기치는 현대농구가 나아가는 트렌드를 제시했다. 외곽에서 공을 잡은 드라기치는 적극적으로 본인의 득점을 노렸다. 수비가 조금만 느슨해져도 여지 없이 3점슛을 때렸다. 공간이 비면 치고 들어가 센터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슛을 넣었다. 한국센터들이 막아봤지만 파울로 끊을 수밖에 없었다. 파워와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플레이였다. 국내 지도자들이라면 ‘너무 혼자 한다’고 볼 수 있는 플레이다. 하지만 한국이 자랑하는 조직적인 수비도 개인기가 월등한 가드 한 명에게 처참하게 무너졌다.
한국가드 중 그나마 혼자서 뭘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선수는 김선형이었다. 속공에서 치고 나가는 그의 스피드는 세계무대에서도 통하는 수준이었다. 드리블이 투박해도 스피드가 워낙 뛰어나 막기 어려웠다. 국내에서 외곽슛이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는 김선형이지만 과감하게 치고 올라가서 쐈다. 그 결과 김선형은 앙골라전 15점으로 가장 빛났다.
16년 전에 비하면 한국선수들의 체격조건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제 고교팀에도 2미터가 넘는 선수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기는 오히려 퇴보했다. 스스로 득점을 만들어내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개인기보다 지역방어를 먼저 습득하고 체력을 강조하는 풍토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필리핀의 포인트가드 짐 알파그는 177cm의 단신이다. 하지만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로 세계무대서도 주눅 들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그는 예선 5경기서 평균 9.2점, 3.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안드레이 블라치가 막판 퇴장당한 세네갈전에서 18점, 4어시스트를 올려 필리핀의 36년 만의 세계무대 첫 승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우리가 아시안게임에서 막아야 하는 선수다.
농구에서 하드웨어인 신체조건은 매우 중요한 기본토대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인 기본기와 개인기 등이 받쳐주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한국농구는 유소년부터 승리를 강조하며 빈약한 체격에 개인기도 떨어지는 아무런 경쟁력 없는 선수들만 양성해내고 있다.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려면 농구를 대하는 기본적인 시선부터 달라져야 한다.
jasonseo34@osen.co.kr
스페인 월드컵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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