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구장 펜스가 또 말썽이다. 하마터면 큰 부상자가 나올 뻔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펜스 부상, 대체 언제까지 아찔한 장면을 지켜봐야만 할까.
지난 5일 대구 한화-삼성전. 1회말 박한이의 타구를 쫓아가던 한화 중견수 펠릭스 피에가 펜스에 그대로 정면충돌했다. 펜스 위 철망에서 공을 건져낸 피에는 그러나 충돌 후 자리에서 쓰러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 와중에도 글러브에서 공을 놓지 않고 아웃을 확인시키기 위해 팔을 들러올리는 투혼을 보였다.
그러나 피에는 왼쪽 어깨에 통증으로 남은 경기에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그라운드에 의료진과 앰뷸런스가 들어왔고, 피에는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고 말았다. 공수 핵심 피에가 빠지자 한화는 삼성에 0-8 무기력한 영봉패를 당하며 연이틀 무득점 빈타로 돌아서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X-레이 및 MRI 촬영 결과 골절 및 탈골 소견은 없는 것으로 진단받았다. 피에가 워낙 강골이라 큰 부상없이 넘어갔지만 시멘트처럼 딱딱하고 완충 작용이 전혀 없는 대구구장의 펜스가 언제든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보여줬다.
부상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 건 역시 대구구장을 홈으로 쓰는 삼성 선수들이다. 최형우는 지난 7월13일 대구 SK전에서 정상호의 좌측 타구를 잡으려 전력으로 뛰다 그만 펜스와 부딪쳤다. 결국 왼쪽 갈비뼈 미세 골절로 한 달 가까이 결장해야 했다.
대구구장의 펜스는 충격 완화 기능이 전혀 없다. 선수들이 뛰어가는 속도를 흡수할 쿠션 장치가 안 되어있다. 피에가 펜스에 부딪칠 때에도 펜스 쿠션이 움푹 들어가기는 커녕 샌드백처럼 단단했다. 딱딱한 벽에 맨몸으로 뛰어가는 것과 다름없는 충격이었다. 한화 관계자는 "피에가 대구구장도 대전구장처럼 펜스가 푹신한 줄 알고 부딪쳤는데 그대로 어깨를 다쳤다. 큰 부상이 아니었지만 선수 본인도 많이 놀랐다"고 전했다.
지난해 대구구장을 찾은 메이저리그 구장 전문가 머레이 쿡 브릭맨그룹 대표는 "구장에서 펜스 중요성은 선수 보호 여부다. 지금 펜스는 개선해야 한다. 펜스 자체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 쿠션 강도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너무 딱딱해서도 너무 부드러워도 안 된다. 메이저리그 구장에 비해 펜스 높이가 낮다"고 지적한 바 있다.
쿡 대표의 방문 이후 KBO는 국내 모든 야구장에 안전펜스 교체를 요청했고, 잠실·목동·문학·사직 등 기존의 대부분 구장들은 메이저리그식 안전 펜스로 바꿨다. 리모델링되거나 신축된 대전·광주 구장도 펜스 안전도가 메이저리그급이다. 그러나 대구·마산 구장만이 변화에 발 맞추지 않은 채 그대로다.
다행히 대구와 마산도 올 시즌이 끝나면 새로운 펜스로 교체할 계획이다. 대구구장은 2016년부터 새로운 구장이 들어서지만 2015년을 위해 펜스 교체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내부적으로 펜스 교체를 계획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또 어떤 선수가 다칠지 모르는 구장을 올해까지 써야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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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