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두산 신경전' 타고투저, 불문율도 바꾼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09.08 06: 47

SK와 두산의 주장인 박진만(SK)과 홍성흔(두산)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마일 맨’이다. 그런데 두 선수가 굳은 표정으로 그라운드 한 가운데 섰다. 표정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류가 흘렀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두 선수는 인사도 없이 이내 서로의 덕아웃으로 돌아섰다. 분위기는 싸늘했다. 지난 6일 잠실 두산-SK전이 끝난 뒤의 일이다.
프로야구계에 암묵적으로 통하는 불문율이 두 ‘스마일 맨’의 얼굴을 짐짓 험악하게 만들었다. “많은 득점차가 날 때 이기고 있는 팀은 도루를 하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다. 상황은 이랬다. SK가 7-1로 앞선 8회 공격이었다. 2사 후 임훈이 볼넷으로 출루했고 2루를 훔쳤다. 두산 선수들의 얼굴은 허탈함과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 경기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두산 선수들은 매너가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SK의 도루가 다소 지나쳤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8회쯤 되면 5점차 정도면 도루를 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라고 거들었다. 그 정도면 이미 승부가 기울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야구계의 불문율에 따르면 SK의 도루는 두산의 심기를 자극한 것이 된다. 동업자 정신에 의거해 웬만하면 그런 불문율은 지켜주는 것이 관례다. 경기 후 홍성흔은 이에 대해 박진만에 항의를 했고 박진만이 물러서지 않으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SK가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악연이라면 악연이다. 두 팀 사이에 이런 일이 올 시즌만 해도 두 번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인 훔치기’에 이은 보복성 빈볼로 논란을 일으켰던 두 팀은 지난 7월 24일 문학 맞대결에서 나주환의 3루 도루가 또 논란이 됐다. 6-0으로 앞선 7회 1사 2루에서 나주환이 3루 도루를 성공시켰는데 송일수 두산 감독의 허탈한 웃음이 카메라에 잡히며 팬심에 기름을 얹었다.
당시 나주환은 “9회 6점차 리드였다면 문제가 됐을 것이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라면서도 “7회였고 상대가 포기하는 흐름이 아니었다. 2루수인 오재원도 나를 베이스에 묶어두기 위한 움직임이 분명 있었다”라고 항변했다. 어쨌든 이런 사례가 한 번 있었던 상황에서 다시 유사한 사건이 벌어지자 두산 덕아웃에서도 참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나마 박진만과 홍성흔이 모든 문제를 그날로 종결시키며 확전을 막았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두산 선수들의 항의는 분명 일리가 있다. 기만행위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졸지에 ‘가해자’가 된 SK 쪽에서는 “시대가 바뀌었다”라고 울상을 짓는다. 올 시즌은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타고투저의 해다. 3할 타자가 2배 늘었고 팀 평균자책점은 모두 치솟았다. 각 팀의 뒷문은 유례없는 화마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서 “8회 6점차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라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다.
SK의 한 선수는 “9회 4점차도 뒤집혀 봤는데 8회에 2~3점 준다고 생각하면 9회가 불안해진다”라고 했다. 팀의 한 관계자 또한 “불펜이 강하다고 하는 삼성이나 LG도 8·9회 역전을 당하지 않나. 하물며 불펜이 약한 우리는 오죽하겠는가”라고 기만행위가 아닌, 승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며 오해하는 일은 없기를 희망했다. 이처럼 역대급 타고투저의 흔적은 오래된 불문율의 재해석까지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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