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던 두 소녀를 하늘나라로 보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불과 몇시간 전 한 방송 무대에 서서 발랄하게 신곡 '키스키스' 무대를 선보였던 이들이 그 무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은 며칠째 쏟아지는 기사와 연이은 발인식에도 쉽게 와닿지 않았다.
사고는 비가 쏟아붓던 3일 새벽 영동고속도로 수원 IC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날 대구에서 KBS '열린 음악회' 녹화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던 이들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차량 이동이 워낙 많은 만큼, 가수들의 교통사고는 일종의 '액땜'처럼 치부돼온 것도 사실. 인기 가수 치고 교통 사고 한번 없었던 팀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의 사고는 달랐다. 멤버 은비가 인근 병원에 채 도착을 하기도 전에 사망하는 큰 사고였다.

사고 원인은 아직도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소속사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는 차량의 뒷바퀴가 빠졌다고 발표했다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니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정정했다. 뒷바퀴가 빠져서 사고가 난 것인지, 사고가 나서 뒷바퀴가 빠진 것인지는 경찰 수사가 끝나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사고 소식은 즉각 큰 충격을 불러왔다. 1992년생, 아직 앳된 은비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함께 방송 활동을 했던 동료들의 충격은 더 컸다.

그러는 동안 리세는 생사를 넘나들며 대수술을 받고 있었다. 중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 그는 새벽 2시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옮겨진 후 11시간이나 수술을 반복했다. 여러 수술을 연이어 진행했지만 출혈과다로 혈압이 떨어져 결국 수술을 중단하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150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결국 리세는 지난 7일 오전 10시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가 깨어나길 간절하게 기도했던 사람들이 모두 깊은 슬픔에 잠겼다.
은비가 머물렀던 고려대 안암병원에 리세도 빈소를 차렸다. 그리고 9일 오전 발인식을 치렀다. 비교적 경상을 입은 다른 멤버 에슐리와 주니, 그리고 골절 접합 수술을 마친 소정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 은비는 화장 후 분당 스카이캐슬에 안치됐지만, 리세는 일본으로 넘어가 한차례 더 장례를 치른 후 안치될 예정이다.
두 사람의 음악과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막 상승세를 타고 있던 이들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울 수밖에 없을 터. 특히 4년 전 MBC '위대한 탄생'에서 가수의 꿈을 위해 온갖 시련을 겪어내던 리세의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당시의 간절하던 리세의 모습과 9일 리세의 영정사진을 함께 떠올리는 게 너무 슬픈 일일 것이다.
연예계 동료들도 이들이 얼마나 씩씩하고 열심이었는지 기억했다. 방송인 홍석천은 지난 8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잠시 해외에 있는 동안에 리세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살아나길 기도했는데 끝내 가버렸다. ‘스플래시’때 팀 인지도를 높여야한다며 악물고 연습해서 완벽한 다이빙을 선보이는 아이. 참 잘 될 줄 알았는데. 이제 꿈을 펼치나 했는데 날개가 꺾였다. 좋은 곳에서 남은 사람들 지켜보길. 고인의 명복을 빌며 잠잘 시간도 없이 활동하던 리세야. 이젠 편히 쉬어라. 대보름달은 참 밝다. 항상 밝게 웃던 네 미소처럼”이라는 글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은비도 팬들이 줬던 인형 선물을 많이 아끼던 평소 모습, 비타민이라 불릴 정도로 주위 사람들에게 활기차게 웃던 모습이 알려지면서 더욱 큰 안타까움을 샀다.
두 사람을 하늘로 보낸 가요계는 유독 더 쓸쓸해 했다. 연예계 사망 사고는 아주 없는 일이 아니지만, 이들의 사고에 더욱 가슴이 아픈 건 레이디스코드가 너무나 일반적인 가수의 일상을 소화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일부에선 습관적으로 '아이돌의 비정한 무한 경쟁', '안전불감증과 무리한 스케줄' 등을 꼬집지만, 그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극의 원인을 어떻게든 외부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일 것이다. 가수들 입장에서 레이디스코드의 사고 당일 일정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었다.
'열린 음악회'는 떼돈을 벌려는 행사 무대도 아니었고, 새벽 1시 귀가는 아주 늦은 것도 아니었다. 당일 스케줄도 '열린 음악회'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고, 레이디스코드는 치열한 아이돌 경쟁에서 무리수 두지 않고 실력으로 점차 상승세를 타던 그룹이었다.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경찰 조사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가수들 입장에선 이 사고가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의 일이 아닌, '내 일일 수도 있었던' 일인 것이다.
두 사람을 보내는 팬들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감동적이었다. 은비의 생전 소원이 음원차트 1위로 알려지면서, 지난해 발표곡 '아임 파인 땡큐(I'm fine thank you)'가 3일 밤부터 각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 음원차트 1위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기에, 다른 기획사 직원들도 스트리밍에 동참하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수술을 마친 소정과 경상을 입은 에슐리와 주니는 당분간 입원치료를 더할 예정. 소속사는 "발인식에 함께한 멤버들은 다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계속할 예정이며, 퇴원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멤버들의 상태와 퇴원여부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말씀 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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