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추석 대첩으로 불린 올 가을 극장가의 승자는 ‘타짜2’(강형철 감독)와 ‘해적’(이석훈 감독)으로 판가름됐다.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지만 ‘타짜2’는 뚜껑을 열자마자 경쟁 영화 ‘루시’ ‘두근두근 내 인생’을 더블 스코어 차이로 크게 따돌리며 박스오피스를 석권했다. 개봉 엿새째인 추석 휴일(8일)까지 전국 159만 명을 빨아들이며 대목 극장가 1위를 지킨 것이다.
놀라운 화력을 보여주진 못 했지만 연휴 절정인 6~8일 사흘간 33만, 31만, 40만 명을 각각 동원하며 명절 화제작다운 점층 구조를 만드는데 일단 성공했다. ‘루시’는 장군님 최민식 효과를 톡톡히 보며 2위를 유지했고, 강동원 송혜교 주연 ‘두근두근 내 인생’은 앞선 두 작품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명량’이 한 바탕 휩쓸고 간 탓에 전반적으로 추석 박스가 감소했다는 평가다.
올 한가위 극장가의 최고 이변은 단연 ‘해적’이었다. 유통기한이 거의 끝나나 싶었지만 이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펄펄 날았다. ‘해적’의 지구력과 뒷심은 수치로 증명된다. 이 오락물은 토요일(6일)부터 갑자기 4위로 점프하더니 8일엔 3위 ‘두근두근’과 불과 4000여명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800만 돌파도 시간 문제다.

개봉한지 한 달이나 지난 영화가 이렇게 매서운 뒷심을 보인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30여 년 만에 빨리 찾아온 늦여름 추석과 ‘돈 아깝지 않은 가족 영화’라는 입소문 덕분이다. 올 추석 연휴는 낮 최고 기온이 연일 30도를 육박할 만큼 무더웠고, 그만큼 에어컨 영화에 대한 수요가 가시지 않았다. 이 혜택을 여름 블록버스터 ‘해적’이 고스란히 누린 것이다.
여기에 가족 영화로 ‘해적’ 이외에 마땅한 대체제가 없었던 것도 흥행 지렛대가 됐다. 욕설이나 폭력적인 장면 없이 코미디로 무장한 착한 영화 ‘해적’이 할아버지부터 손녀까지 3대를 고루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틈새를 같은 12세 영화 ‘두근두근’이 파고들어야 했지만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타짜2’와 ‘해적’의 이 같은 쌍끌이 흥행은 업계 후발 주자이던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를 다시 보게 만드는 확실한 계기가 됐다. 상대의 부진이나 일회성 우연이 아닌 치밀한 기획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롯데는 그간 ‘과속스캔들’ ‘최종병기 활’ 같은 흥행작을 내놓았지만 이는 DCG플러스와 손잡은 공동 투자작이었다. 롯데가 자력으로 메인 투자한 작품 중 최고 흥행작은 작년 여름 개봉해 500만 명을 동원한 ‘더 테러 라이브’ 정도였다.
롯데가 이렇게 단시간 내에 괄목상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투자, 마케팅팀의 과감한 체질 개선과 공격적인 제작사 탐방 덕분이란 게 업계 평가다. CJ, 쇼박스에서 보류되거나 거절된 작품을 개발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발품을 팔며 영화사를 다니며 경쟁력 있는 시나리오를 찾아냈고, 머뭇거리지 않고 기획개발비에 인색하지 않았던 게 주효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작년 영화 사업에 애정을 쏟은 손광익 대표가 떠나며 한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것도 터닝 포인트가 됐다. 롯데 특유의 배타적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외부 실력자들을 영입한 것 역시 체질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이다. 롯데가 ‘타짜2’를 비롯해 ‘해적’ ‘역린’ ‘협녀’ 같은 100억대 대작을 선점할 수 있었던 건 보수적인 롯데답지 않은 과감함과 흥행에 대한 확신 덕분이었다.
5~6년 전 매주 신작들이 사활을 걸고 링에 오르던 주말, 유일하게 전화를 받지 않는 회사가 롯데였다. 어쩌다가 통화가 이뤄져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고 “집이니까 월요일 다시 전화를 달라”던 롯데 임직원들을 보며 ‘과연 이 회사는 왜 영화와 극장 사업을 하는 걸까’ 궁금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말마다 제작자와 감독, 배우들과 지방 무대인사를 돌고 있다.
이제 고작 한 두 편의 시즌 영화가 흥했다는 이유로 롯데가 갑자기 영상 문화 1위 기업으로 도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3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타석에 들어서는 횟수부터 늘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만 선구안이 정확해지고 진루 가능성도 비례하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존이 좁다며 심판만 탓하는 타자는 프로가 아니다. 내친 김에 하나만 더. 롯데시네마가 고객 불만족 1위인 팝콘 가격을 인하하는데 앞장선다면 지금보다 더 박수를 받지 않을까 싶다.
bskim01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