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 이하 괜사랑)는 사연 많은 이들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행복한 순간 자해하고, 어떤 이는 남녀 관계에서 불안 장애를 겪는다. 개성 강한 인물들 사이에서 유난히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가 있다. 장재열(조인성)의 형 재범 역을 맡은 배우 양익준이다.
그렇다. 양익준이라 쓰고 ‘미친 존재감’이라 읽는다. 장재범은 과거 의붓아버지의 죽음 이후 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인물이다. 이밖에도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 읊조리는 듯한 말투 등 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다. 그런 캐릭터를 맡은 양익준도 만만치 않다. 그는 데뷔 13년 차의 배우이자, 영화 ‘똥파리’(2009)로 이름을 알린 감독이다. 그러면서도 “조인성, 공효진처럼 유명한 사람들과 연기하면 긴장된다”고 너스레를 떠는 익살꾼이었다.
인물에 대한 뛰어난 몰입부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생을 주사기로 공격한 장재범이 조동민(성동일)의 손에 이끌려 교도소로 향하는 장면이 있다. 조동민은 장재범에게 잠시 자유를 주는데 장재범은 고성을 지르며 다리 위를 내달린다. 캐릭터가 지닌 광기와 배우의 동물적인 에너지가 돋보이는 신이다. 양익준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소화했다면 어색했을 법도 하다. 이에 양익준은 “제가 봐도 재범이는 미친놈 같다”며 껄껄 웃었다.

“20대 때 연기적인 실험을 많이 해봤어요. 이제는 촬영 전날 주어진 신의 감정 자체를 느끼고 가요. 대사는 숙지 정도만 해요. 외우면 연기할 때 암기하듯 나오거든요. 상대 배우의 분위기나 현장에서의 느낌에 따라 어느 정도 열어놓는 부분이 있어요. 훈련된 연기를 하시는 분들에겐 제가 민폐를 끼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약속이라는 건, 하는 순간 그 약속에 익숙해지거든요.”

양익준이 상상했을 캐릭터의 과거가 궁금했다. 배우들은 흔히 인물의 전사(前事)를 만들어 놓는다. 질문을 던지니 술술 답했다. 그는 “재범이는 10대 초반 학교를 그만두고 난폭하게 살아가다 업소에서 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임신시킨 여자도 있을 것이고, 업소에서 맞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린내 날 정도로 노트 10장에 전사를 꼼꼼히 쓰지만 촬영 직전에 잊는다”고 덧붙였다.
“재범이가 행패를 부리긴 하지만 실은 약하고 안타까운 친구예요. 잘 보면 재열이에게도 얻어 터져요. (전작인 KBS 2TV 드라마)‘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도 제가 맡은 역이 제일 나쁜 사람 같지만, 실은 매일 맞잖아요. 연약하기 때문에 폭력성으로 자신을 가린 거예요. 아니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드니까요. 진짜 내면이 강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양익준은 그런 장재범을 완성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총 8번의 탈색 과정을 거친 금발 헤어스타일도 그렇다. 매 촬영마다 회색과 흰색을 섞은 스프레이를 칫솔에 묻혀 1시간에 걸쳐 한땀 한땀 칠한다. 제작진은 가발을 권했지만 그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수고를 택했다. 하지만 스프레이로 덧칠된 머리는 너무 딱딱해 머리를 쥐어뜯는 연기조차 할 수 없다. “가발이랑 다를 것이 없다”고 웃는다.
문득 양익준의 실제 싸움 실력이 궁금해졌다. 그는 “살면서 누굴 때려본 적은 없다. 싸움이 일어나 방어를 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아리송한 설명을 더했다. “재범이는 폭력적인 성향으로 약함을 감춘다면 저는 맞으면서 풀어냈다. 가끔 스스로 때릴 때가 있다. 정신을 깨우기 위해 자신을 때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이다. 알고보면 여린 사람이란 점이 양익준과 장재범의 공통점이었다.
독립영화계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양익준이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주연 연출 제작을 겸한 영화 ‘똥파리’다. ‘똥파리’가 성공을 거두며 그는 명성을 얻었다. 부작용도 있었다. 이후 겪게 된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다. 그는 “영화 성공 이후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인간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까 관계를 새로 맺는다는 게 오히려 어렵더라. ‘똥파리’ 제작부터 그 이후의 일들은 정신적으로 제 용량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이전보다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대신 생활 습관이 바뀌었단다. 그는 “내밀하고 조용하게 산다”고 말했다. 대중이 짐작하는 연예인의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제가 연예인가요?”라고 미소 띤 얼굴로 반문했다. 연기 활동만큼이나 일상이 중요하다고 했다. 차가 없는 그는 산책을 즐긴다고 했다. “정신이 아픈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정해져있다”고 말했다.

“전 재범이가 아니라 지해수(공효진)의 병원 환자 역을 했어야 했어요. (웃음) ‘괜사랑’은 다른 드라마에 비해 대본이 빨리 나와 비교적 전개를 예측하면서 준비할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매번 강한 역할을 맡아서 연기하는 입장에선 조금 지루하기도 해요. 제 안에 귀여운 면도 많습니다. 창작하는 분들이 배우들의 이면들을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똥파리’ 이후 ‘감독’ 양익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씨익 웃더니 “이왕 기다린 거 더 기다리시라”고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는 없는 것 같아요. 제 몸과 마음이 만들고 싶으면 움직일 거예요. 일하는 것만큼이나 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여행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일할 때만 집중해서 하고 가급적이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괜사랑’이 끝나면 또 일상으로 돌아갈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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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