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애의 장동건’ 이해영, 이순신의 남자가 되다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4.09.11 15: 17

영화 ‘명량’은 주인공 이순신 최민식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달리 말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고뇌하며 외로이 맞서 싸우는 이순신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라 상대적으로 다른 역할들이 주목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다수의 배우들은 최선을 다해 연기했고, 함께 ‘명량’이란 영화의 성공을 이끌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의 마음에 남은 건 성웅 이순신 뿐 아니라 그를 도왔던 민초들, 비록 겁이 많았지만 용기를 내 끝까지 맞서 싸웠던 군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이순신의 남자 이해영이 있었다.
이해영은 ‘명량’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순신의 옆을 지키는 그의 부하 송희립 장군 역을 맡아 존재감을 빛냈다. 왜적들과의 싸움에서 전의를 잃은 채 절망하는 장수들이 많았지만, 송희립은 늘 이순신의 옆자리를 지키며 남다른 충성심을 보였다. 함께 했던 최민식 선배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해영의 모습에 송희립이 겹쳤다.
“(최민식 선배에) 진짜 감사해요. 저희(후배 배우들)가 감동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저는 진심으로 민식 선배님과 작품을 했다는 게 큰 행운을 얻은 거라고 생각해요. 후배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남자 대 남자로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 정말 존경하게 됐습니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거든요. 어렴풋이 제가 알고 있었던 것들, 한 작품 두 작품 경험하면서 잊어버리고 놓치고 가는 것들을 이제 잊지 말아야겠다 싶었어요. 게다가 이렇게 관객들이 많이 찾아주시니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인 것 같네요.”

배우로서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들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길고 긴 대답이 돌아왔다. 그만큼 그가 경험한 배우 최민식은 한마디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인물이었고, 감동 그 자체였다.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벽파진을 불태우는 장면이 있었어요. 장수들을 세워놓고 불을 지르고 장수들한테 ‘죽음에 기대지마라’고 하는 장면이었는데 나중에 알았어요. 선배님 컨디션이 안 좋으셨다는 걸요. 계속 기침도 하시고 몸도 붓고 옆에서 볼 때 촬영이 더해질수록 만신창이가 돼 가시는 것 같았죠. 선배님이 지칠 대로 지치셨는데 영화에선 편집됐는데 그 부분에 제 리액션 장면이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찍을 때 가이드를 해주시려고 하더라고요. ‘선배님 앞에서 대사를 하도 들어서 외울 지경’이라면서 가이드를 안 해주셔도 된다고 했죠. 진심이었어요. 너무 애처로웠거든요. 그런데 선배님은 ‘내가 할 거니까 하라’면서 끝까지 마치 선배님 커트를 찍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대사를 해주셨어요. 오케이가 나올 때까지요. 너무 감동 받았습니다.”
그날 이해영은 배우로서의 초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배우들이 가져야할 동료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배웠다. 연기에서 표현되는 기술적인 면보다는 배우들 사이의 감정의 교류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선배님은 한 번도 자기가 먼저 앉지 않으세요. 솔선수범으로 보여주시니까 현장 분위기는 집중하고 몰입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자기 것 하기 바쁘거든요. 연기적으로 배우는 부분도 많지만, 그런 후배를 대하는 마음, 스태프 대하는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지금 영화를 찍고 있는데요, 이젠 저도 그런 부분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상대 배우에게 조금 더 빨리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영화에선 잘 못 느꼈던 걸 느끼고 있어요.”
이해영은 오랜 시간 주로 스크린에서 활약해 온 배우다. ‘박추 칠 때 떠나라’, ‘굿모닝 프레지던트’,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한반도’ 등의 영화에 출연했고 ‘퀴즈왕’, ‘결혼식 후에’ 등의 영화에서는 주연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한 작품은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였다. 그는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4에서 5, 7~8까지 이영애의 대학 선배이자 세 번째 남자친구인 장동건 역으로 출연해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장동건이 다소 나쁜 남자로 끝이 났다는 말에 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창피해요. 그러니까요, 그렇게 됐네요. 장동건 자체가 그 캐릭터는 재미가 있었어요. 알고 보면 ‘허당’이에요. 이 놈이 보이는 이미지는 깔끔하고 일에는 철두철미하지만, 차 주차해놓고 어디에 주차한 지는 잘 모르고 이런 친구에요. 그 캐릭터가 재밌어서 하게 됐어요. 영애랑 옥신각신 하다가 우유부단한 면이 있어서 애타게도 했고, 영애를 좋아하는 팬들한테는 비호감이 되기도 했어요.”
그의 말대로 장동건 캐릭터는 그의 인지도를 높여줬다. 길에서도 ‘막돼먹은 영애씨’를 본 팬들이 자신을 가리켜 “장동건이다”라고 부르는 바람에 당황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고.
“그 드라마의 인기가 그 정도인 줄 몰랐어요. 부산 영화제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해운대에서 그런 일화도 있어요. ‘장동건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어디어디?’ 하다가 절 보고는 ‘뭐야?’ 이래서 주변 사람들은 물론 저도 낯이 뜨거웠던 적이 있어요. ‘막돼먹은 영애씨’를 하면서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겼었어요.”
‘막돼먹은 영애씨’를 통해 인연을 맺은 배우 김현숙과는 가끔 안부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이어가는 사이다. “결혼식 때 중요한 일이 있어서 못갔다. 너무 미안하다”고 말한 이해영은 영화 ‘명량’의 성공 후 김현숙이 보낸 카카오톡으로 "영애의 두 남자가 나온다"고 했다며 웃어 보였다. ('명량'에는 이해영 뿐 아니라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3에서 주인공 영애와 커플을 이뤘던 배우 이승준이 안위 역으로 등장한다.)
현재 이해영은 '명량'에서 함께 했던 배우 이정현과 함께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곧 관객들 앞에 다시 설 예정이다. 이정현의 남편 역이다. 현재는 영화 '흑산도'를 촬영중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어봤더니, 다시 한 번 "최민식 선배에게 감사한다"며 마음을 드러냈다. "묻어남이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이 진실한 이 배우의 마지막 한마디가 남다른 울림을 줬다.
"최민식 선배님은 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희노애락이 잘 느껴지시는 배우에요. 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같은 배우가 눈물을 흘려도 이 배우가 울고 저 배우가 우는데 이 배우는 더 슬픔과 기쁨이 느껴지는 배우가 있어요. 그런 건 기술적으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에요. 어떻게 배우 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아오는지에서 나오는 거죠. 삶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배우, 그런 묻어남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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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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