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도 못 넘는 흥행 온도차다. 한국의 외화 흥행 모습이 더 이상 미국의 양상을 그대로 따른다고 말할 수 없은 지 꽤 됐다. 한국 영화 시장이 커질수록 점차 그 흥행 역시 독립적인 모습이다. 여기에는 한국 대중의 정서, 국민성, 관객의 취향, 극장 대진운 등 여러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우선 올해 북미에서 가장 흥행을 거둔 작품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다. 이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를 밀어내고 올해 북미 최고 히트작으로 등극했다. 누적 수입은 2억 9642만 8705달러(박스오피스 모조). 이 영화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빠른 기간 내에 막강한 성적을 냈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마블을 좋아하는 한국 대중이지만, 한국형 슈퍼히어로에는 대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다룬 '명량' 등 한국영화 대작들에 밀려 지난 7월 31일 개봉, 130만여명(영진위)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달러 수입으로 환원하자면 1001만 3310달러다.
북미 흥행 3위에 올라 있는 '레고 무비'(2억 5776만 692달러)는 한국에서 아예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난 2월 6일 국내 개봉한 워너브라더스의 '레고무비'는 직배사와 극장의 부율 문제(제작/배급사와 극장이 수익을 나누는 비율)가 해결되지 않아 서울 대형 극장체인 CGV와 롯데시네마에서 상영되지 못했던 것. 국내에서 모은 인원은 고작 23만 6129명이다. 이후 이 부율 문제가 풀렸는데, 어찌보면 '비운의 작품'이라 할 만 하다.
북미에서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는 4위(2억 4476만 9,458달러)를 차지했다. 월드 와이드 성적으로 치자면, 폭발적인 중국에서의 흥행 덕에 1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양상이었다.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는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올 흥행 6위에 올라 있지만 529만 5931명을 모으는 데 그친 것. 전작 시리즈들이 기록했던 700만대에 이르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미 흥행 9위에 랭크된 '고질라'(2억 67만 6069달러)는 개봉 전부터 포스터 욱일기 논란에 휩싸여 70만 9734명을 모으는 데 머물렀다.
한국에서 외화 흥행 1위는 이제 전설이 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1029만 6101명)이다. 물론 '겨울왕국'은 미국에서도 4억 73만 8009달러의 수익으로 역대 흥행 순위 19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헝거게임'(4억 801만 692달러)이 이 '겨울왕국'보다 높은 15위임을 상기하면, 한국과 미국의 흥행 온도차를 느낄 수 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469만 7110명)도 올 국내 박스오피스 8위로 흥행에 성공했다. 반면 북미에서는 1억 19만 7903달러의 수익으로 22위에 랭크돼 있다. '톰 아저씨' 톰 크루즈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호감도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근래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비긴 어게인'이다. 9월 둘째 주 미국 박스오피스 35위를 차지한 '비긴어게인'이 한국에서 돌풍 그 자체. 전세계 국가 중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흥행 수입을 올리고 있다. '겨울왕국'과 '비긴 어게인'의 공통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흥행이 잘 됐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북미 포함 전세계 트렌드와 함께하면서도 또 독자적인 흥행 노선을 걷는 것이 한국이다. 우리나라에서 흥행 1위를 기록한 '어바웃 타임'과 '비긴 어게인'의 화려하지 않은 외형 속 따뜻하고 긍정적인 정서적 분위기를 짚으며 한국인에게 어필하는 감성을 분석하는 시선도 있다.
'아이언맨'은 잘 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잘 되지 않았던 것, '헝거게임'이 폭발력을 갖지 못했던 것에는 '익숙함'의 문제를 짚는 시선도 있고,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국내 관객들에게 유독 선호도가 높은 스타의 존재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또 '겨울왕국'과 '비긴 어게인'은 음악 신드롬의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이고,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 같은 경우는 인터넷이 잘 발달된 우리나라의 입소문 위력을 보여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 불운하게 한국 대작과 맞붙어 깨진 사례라면 '비긴 어게인'은 추석 대전에서 틈새 시장을 공략해 성공한 경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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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