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온 여건욱, 가을 직진 꿈꾼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09.12 13: 01

고지가 손에 잡힐 듯 했다. 그 고지를 손에 잡을 기회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여건욱(28, SK)은 좀처럼 그 목표를 잡지 못했다. 거의 2년간 계속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 답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고 공의 힘도 문제가 없었다. 2군에서는 코칭스태프의 호평을 받을 정도로 호투를 이어갔다. 그런데 1군 마운드에만 서면 작아졌다. 흔히 말하는 ‘2군 선수’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건욱은 “압박감이 있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리고 이 압박감은 2년 가까이 여건욱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여건욱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13년 스프링캠프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좋은 체격 조건에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우완 정통파 투수라는 점은 이만수 SK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장기적인 선발 요원으로 키우겠다는 심산이었다. 공도 많이 들였고 상승세도 가팔랐다. 2013년 SK의 스프링캠프 당시 투수로서 최고의 성장세를 보인 선수가 바로 여건욱이었다. 팀에서도 기대가 컸고 여건욱 스스로도 희망에 부풀었다.

2013년 4월 3일, 잠실 두산전에서 6이닝 무실점 호투로 프로 첫 승을 따낼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몇 차례 기회를 살리지 못하자 스스로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여건욱은 “압박감이 있었다. 나는 못 던지면 2군에 가야 하는 선수였다. 잘 던져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것이 꼬여가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선수들의 전형이었던 셈”이라고 했다. 그렇게 2군에 내려가고, 2군에서 잘 던지면 다시 1군에 올라오고, 압박감에 못 이겨 다시 2군으로 내려가는 생활이 반복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6월 이후 1군에 등록되는 일수가 많아진 여건욱은 8월 마지막 경기였던 31일 광주 KIA전에서 선발 신윤호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나가 2⅔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으로 잘 던지며 올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이어 7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선발 등판, 7이닝 2실점 호투로 팀의 대승을 견인했다. 올 시즌 첫 선발승이었다. 잘 던져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들어가 제구가 흔들리는 모습은 없었다.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이었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선발 기회에서 잘 던졌다. 그간 자신을 옭아매던 압박감을 털어버리지 않았다는 불가능했다. 홀가분함이 한 몫을 했다. 여건욱은 “어차피 올 시즌 목표는 1군에서 30이닝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미 목표는 이뤘다”라고 살짝 웃는다. ‘잃을 것이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무장한 여건욱은 그간 좀처럼 건너지 못했던 징검다리를 눈 딱 감고 한 번에 건너버렸다. KIA전 이후 “여건욱의 가능성을 봤다. 그 정도만 던지면 충분히 통할 수 있다”라고 호언장담했던 이만수 감독의 자신감이 드러난 한 판이기도 했다.
최근 이만수 감독과 조웅천 투수코치의 조언을 받아 약간의 멈춤 동작이 있었던 투구폼을 이어서 던지는 폼으로 교정한 여건욱은 그 효과도 보고 있다고 말한다. 두산전 호투는 “오른손 타자에게도 네 체인지업은 충분히 통할 수 있다. 겁 먹지 말고 과감히 던지자”라고 다독인 포수 정상호의 리드도 한 몫을 했다. 이처럼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말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한 여건욱은 올 시즌 목표에 대해 “가을 야구를 한 번 해보고 싶다”라고 털어놨다.
여건욱은 “선배들은 가을야구를 많이 해봤다. 하지만 우리 또래의 어린 선수들은 그런 경험이 거의 없다”라면서 “물론 내가 엔트리에 들어갈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선배들이 포스트시즌을 거치며 기량이 확 향상된다고 하더라.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다”라고 힘줘 말했다. SK는 4위 LG와의 승차가 1경기로 막판 역전 4강을 꿈꾸고 있다. 그러려면 스스로 남은 등판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여건욱이다. 여건욱이 알을 깨고 나오며 꿈꾸던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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