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골프에 문외한이지만 귀동냥에 따르면, 골퍼 간의 실력 차이가 그나마 두드러지지 않는 구간이 파3홀이라고 한다. 초보자에게 가장 무난한 코스인데다 자주 다녀 지형에 익숙한 골프장이라면 싱글을 치는 고수들과 견줘도 대동소이한 채점표를 받을 수 있는 홀이기 때문이다.
보통 티샷에 이어 세컨샷으로 그린에 공을 안착시키는데 이를 어프로치샷이라고도 부른다. OB만 나지 않는다면 설사 첫타가 불만족스러워도 이 세컨샷을 잘 구사하면 얼마든지 세 번 만에 공을 원하는 홀에 넣을 수 있게 된다. 비장한 각오로 세컨샷을 앞둔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이재용 감독)도 이와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강동원 송혜교라는 걸출한 스타를 내세운 ‘두근두근 내 인생’은 올 추석 연휴 극장가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명절엔 아무리 오락영화가 강세라지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타짜-신의 손’(강형철 감독)에 거의 반 토막 수준의 열세를 보이고 만 것이다. 최민식이 나온 ‘루시’에도 뒤졌고, 연휴 중 하루는 개봉 한 달이 지난 ‘해적’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만큼 부진을 겪었다.
관람 후 평점이 7점대일 만큼 만듦새가 평균 이상이며 배우들의 연기도 대체로 무난했던 ‘두근두근’이 왜 이렇게 시장에서 제 평가를 받지 못 했을까. 많은 이들은 개봉 직전 터진 여주인공의 탈세 논란이 직격탄이 됐을 거라고 입을 모으지만 과연 그럴까 의문이다. 많은 마케팅 베테랑들은 탈세 논란이 분명 흥행의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겠지만 그 폭은 커봐야 10% 미만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송혜교 탈세를 비판하는 대다수가 애초부터 이 영화의 수요층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영화는 공공재인 TV 전파와 달리 적극적인 소비가 요구되는 장르인 만큼, 개봉 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취합해 구매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람 후 기대를 밑돌면 평점 1점을 부여하며 기회비용을 보상받으려 하고, 그 반대의 경우엔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 소비를 했다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짙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송혜교가 수십 억대 탈세를 시도했든 아니면 직원을 잘못 둔 실수였든 영화는 영화만의 운명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두근두근’을 보려고 기다렸다가 송혜교 탈세 때문에 변심한 관객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 만약 논란의 중심인물이 강동원이었다면 상황은 180도 달랐을 것이다. 영화의 매출과 호감도에 고스란히 악영향이 끼쳤겠지만, 강동원에 비해 티케팅 파워가 약한 송혜교 때문에 ‘두근두근’이 부진했다는 주장에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자체의 매력이 부족했거나 장점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비록 첫타는 실력 발휘를 못 했지만, 그렇다고 낙담하기엔 아직 이르다. 10월 초까지 센 경쟁작이 없고,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관람 후 평가도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타짜2’를 추월하면서 판을 바꾸기엔 여러모로 역부족이겠지만 힘이 빠진 ‘루시’를 제치고 2위 전략을 구사한다면 남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올 여름 ‘명량’으로 창사 이래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CJ엔터테인먼트의 축제 분위기와 피로감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하던 1등을 못했다는 이유로 끝까지 상영작에 정성을 다하지 않는 인상을 주는 건 프로답지 못한 태도다. 현명한 학부모는 자녀의 등수에 연연하기보다 학업 성적 추이를 지켜보면서 적절히 개입해주는 사람들일 것이다. 자체 기획이 아니고 투자 파이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작품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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