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 메달은 있으니 우승 반지 한 번 껴보고 싶다".
'명품수비' 한화 내야수 한상훈(34)은 지난 13일 대전 KIA전에서 개인 통산 10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프로야구 역대 113번째 기록. 지난 2003년 대졸 신인으로 입단한 뒤 10시즌만의 고지였다. 특히 한상훈의 1000경기는 모두 한화에서 뛴 기록이라 의미가 두 배다. 역대 한화 소속으로만 1000경기 이상 뛴 선수로는 이강돈(1217) 강정길(1037) 장종훈(1950) 강석천(1457) 이영우(1312) 백재호(1007) 이범호(1120) 김태균(1364)에 이어 한상훈이 역대 9번째 선수. 한상훈은 "1000경기 출장은 내게 의미 있는 기록이다"면서도 "이제 우승 반지 한 번 껴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10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는데 의미가 있을 듯하다.

▲ 남들 다하는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난 꿈도 못 꾼 기록이다. 그것도 한 팀에서 이렇게 1000경기를 출장하게 돼 더욱 의미가 있다. 내가 감히 장종훈 코치님 같은 분들에 이어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
- 돌이켜볼 때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아쉬운 경기가 있나.
▲ 프로 데뷔전에서 첫 타석이 기억난다. 꿈의 무대를 밟아봤는데 그렇게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처음이었다. 돌아보면 매경기가 아쉬웠다. 1000경기를 한 만큼 나이도 있고, 앞으로 1경기 할 때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쏟아 붓는다. 지금껏 한 번도 '잘했다' 싶은 경기가 없다.
- 데뷔 때부터 명품 수비로 평가받았다. 비결이 무엇인가.
▲ 대부분 사람들이 방망이 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난 어릴 적부터 수비하는 게 재미있었다. 공을 받고 던지는 것이 즐거웠다. 이종범 코치님이 유격수로 활약할 때 우상이었다. 이 코치님과 같은 글러브 메이커를 쓰기도 했다. 물론 실력은 따라잡을 수 없었다(웃음).
- 아마추어 시절 투수를 겸업했는데 어느 정도였는가.
▲ 정말 최고 150km까지 던졌다. 공 던지는 것을 워낙 좋아해 투수를 할 생각이 있었다. 신일중 3학년 때 청원중을 상대로 퍼펙트를 한 적도 있다. 신일고 시절에는 봉중근이 2학년 때 미국으로 간 뒤로 김광삼과 함께 투수를 맡았다. 경희대 3학년 시절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뒤로 투수를 할 수 없게 됐다. 더 이상 스피드가 나지 않더라.
- 정말 프로에서도 진지하게 투수를 할 생각이 있었나.
▲ 그렇다. 대학에 진학할 때 미리 한화에 지명을 받았는데 당시 지금은 돌아가신 故 황경연 단장님께서 따로 부르셔서 '아프지 말고 투수로 준비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만약 한화에 투수로 입단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결국 야수로 입단했는데 대학 시절까지 야수도 함께 해서 적응하는데 문제없었다.

- 군입대 이후 타격이 향상되며 한 단계 성숙된 모습이었다.
▲ 군입대 전후로 생각하는 멘탈이 바뀌었다. 군대 가기 전에는 조급증이 있었다. 뭔가 안 되면 생각만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출루율이 향상된 것에 대해) 내가 팀에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안타를 치는 것도 좋지만 공을 정말 많이 보고 투수를 괴롭히며 투구수를 늘리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봤다. 우리팀에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타자가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공을 더 많이 보고, 볼넷도 많아지며 삼진이 줄었다. 무조건 안타를 치는 것에만 출루에 목적을 두며 스타일을 바꿨다.
- 올 시즌 전체를 한 번 돌이켜보면 어떠한가.
▲ 지금까지 해온 날보다 앞으로 해갈 날이 적다. 이제는 야구 보는 시야가 많이 달라졌다. 한 경기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예전 선배들이 내개 했듯이 이제는 내가 어린 선수들에게 내가 느끼고 배운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해야 한다. 한화가 좋은 명문구단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잘 되어야 한다. 이제 12경기가 남아있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꼴찌를 면할 수 있도록 하겠다.
- 지난 6월25일 대전 롯데전에서 발목 부상이 많이 아쉬웠다.
▲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때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얘기는 누구나 다할 수 있다. 내가 부상으로 빠진 후 (강)경학이가 유격수를 보게 됐는데 그 선수를 통해 나도 다시 담금질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부상당한 게 잘 되지 않았나 싶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었고, 이만한 게 다행이다. 그때 상황을 보면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어질 상황이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나 나름대로 더 훈련을 열심히 하겠다. 내년에는 더 강한 모습으로 준비해 다시 주전의 자리에 도전하겠다.
- 후배에게 주전 자리를 도전한다는 말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 난 여태까지 한 번도 주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김인식 감독님과 한대화 감독님 시절 주전으로 나간 적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 뒤에 있다 기존 선수들이 아프거나 빠졌을 때 대체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마음 편하게 주전이란 생각으로 시즌을 준비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내 나름대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체력적으로도 관리가 이뤄질 수 있었다.
- 같은 내야수이자 선배로서 강경학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 좋은 실력와 마인드를 갖추고 있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지만 그 나이에 이 정도 하는 것도 대단하다. 경학이는 한화의 미래다. 가장 중요한 건 멘탈이라고 본다. 옆에서 아무리 위로해도 스스로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경기에서 뛰는 건 바깥에 있는 선수나 코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경학이는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멘탈만 잘 다듬는다면 좋은 선수가 될 것이다.
- 최근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 우승 반지 이야기를 했다.
▲ 한화에 와서 꿈의 무대를 밟았고, 주전으로도 뛰어봤다. 1000경기와 FA 계약까지. 프로선수가 해볼 건 한 번씩 해봤다. 유일하게 못해본 게 우승이다. 2006년에 기회가 있었는데 준우승 메달만 받았었다. 우승하면 반지가 주어지는데…. 우승 반지는 큰 명예이고, 집에 가보가 될 수 있다. 분명 우리 한화도 우승할 날이 올 것이다. 이왕이면 내가 선수를 하고 있을 때 해보고 싶다.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우승 반지를 끼고 은퇴하고 싶다.
- 200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 많이 아쉬울 듯하다.
▲ 그때 정말 우승 분위기였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금방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몇 년인가. 8년째가 되도록 이런 기회가 없다. 아쉽다. 너무 아쉽다.
- 한화의 우승, 진지하게 생각하면 언제쯤 가능할까.
▲ 3년 안에 가능할 것으로 본다. 타자들이 자리 잡아가고 있고, 어린 투수들이 선발진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여기에 베테랑들이 힘을 보태며 좋아질 것이다. 올해보다 내년, 내년보다 내후년이 좋아질 것이다. 계속 밑에 있어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인생이 그렇듯 야구도 내리막이 오르막이 있고, 오르막이면 내리막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우승을 갈망하고 있기에 한마음으로 이루면 더욱 값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 팬들은 성적에 관계없이 항상 사랑해주신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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