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야구] 亞 최강 한국 향한 태국의 아름다운 도전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4.09.22 20: 12

야구의 불모지에서 온 작은 체구의 선수들. 그리고 상대는 이번 대회 참가국 중 최강의 멤버를 보유한 한국. 장소도 적지였다. 누군가에게 아시안게임은 4년 동안 노력한 결과물을 수확하는 시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날 태국의 야구선수들에게 한국전은 새로운 시작 의미를 띠고 있었다. 한국은 22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A조 예선 첫 경기인 태국전에서 4회말까지 15득점했고, 15-0으로 5회 콜드게임 승을 거뒀다. 과정이 관심을 모았을 뿐, 결과는 모두가 바라봤던 것과 일치했다. 하지만 태국에게는 의미 있던 일전이었다.
경기 내용만 보면 시작부터 어려웠다. 체구가 우리나라 중, 고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타자들은 김광현(SK)의 공에 적응하지 못했고, 선발투수인 시하맛 위사루트는 아마도 야구를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운 타자들을 만났을 것이다. 시하맛은 아웃카운트를 잡기도 전에 김현수의 적시 2루타에 실점했다.

물론 소득도 있었다. 1회말 1점을 내준 뒤 한국의 간판타자인 4번 박병호(넥센)를 상대로 볼카운트 3B-2S에서 느린 공을 던져 타이밍을 빼앗아 헛스윙 삼진을 유도하는 결실도 있었다. 이것이 시하맛이 만들어낸 첫 아웃카운트였다.
하지만 이후 더 큰 산들을 넘어야 했고, 그 산은 태국 선수들이 지금 넘기에는 너무 험하고 높았다. 시하맛은 1이닝을 채 넘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1회말에만 8실점한 태국은 5회초 공격을 끝으로 완패했고, 그대로 짐을 싸야 했다.
좌익수 피팟핀요 산야락도 약이 될 경험을 했다. 한국이 5-0으로 태국을 몰아붙이던 1회말 2사 만루에 손아섭(롯데)은 좌익수 방향으로 날아가는 평범한 플라이를 쳤다. 이닝을 끝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피팟핀요는 타구를 쫓아 일순간 감을 잃었고, 공이 그라운드에 떨어져 태국은 추가 실점했다.
피팟핀요는 3회말에도 나성범(NC)의 타구를 따라가다 잡지 못했고, 그라운드 룰 더블을 허용했다. 그러자 태국 벤치는 피팟핀요를 빼고 숩술레쿤 무카폴을 좌익수 위치에 넣었다. 이날 경기의 피팟핀요는 야간경기가 처음인 태국 선수들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경기장을 메운 관중들은 피팟핀요가 교체될 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위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태국이 어색하고 모자란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클락 알렉산더는 인상 깊은 장면을 수차례 연출했다. 자신의 수비 위치인 3루에서는 정확한 타이밍에 슬라이딩 캐치를 하며 아웃카운트를 늘렸고, 타격에서는 아웃카운트가 쌓이는 것을 막았다. 3회초 태국의 첫 안타도 클락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태국 대표팀 24명의 평균 연령은 만 23.4세로 출전국 가운데 가장 낮다.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내야수 콩사바이 티라삭(42)을 제외하면 만 30세를 넘는 선수조차 없다. 이 선수를 뺀 태국 대표팀의 평균연령은 21.7세까지 낮아진다. 태국 야구의 미래인 이 선수들은 한국과의 경기를 통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야간경기를 했고, 2만여 명이 들어찬 곳에서 함성을 들으며 뛰었다.
휼륭한 기술은 없었지만, 경기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진지했다. 그래서 모자란 기량을 비판할 수 없었다. 타자들은 악착같이 투구를 공략하려고 애썼고, 키가 작은 야수들은 좁은 보폭을 극복하기 위해 한 발 더 뛰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굴복하지는 않았다. 당당히 싸워 깨끗이 패하는 스포츠맨십이 있었다. 결과는 별다를 것 없었지만, 도전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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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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