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상미가 달라졌다. 만날 당하기만 하고 우울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화면을 꽉 채웠던 남상미가 영화 ‘슬로우 비디오’(김영탁 감독)에서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긍정에너지를 가득 담고 나타났다. ‘남상미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확 달라져서 돌아왔다.
남상미는 ‘슬로우 비디오’에서 매일 같이 쫓아다니는 사채업자에게 큰소리치고 거리에서 사람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열창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인 수미 역을 맡았다. 스크린을 보면 남상미의 첫 등장이 상당히 놀라우면서도 신선하다.
빗으로 절대 빗기지 않을 것 같은 파마머리에 자유분방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패션, 비비크림만 바른 것 같은 얼굴, 왈가닥 소녀 같은 거침없는 성격이 수미 캐릭터다. 남상미 같지 않은 수미는 알고 보니 가장 남상미와 닮은 캐릭터였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 ‘결혼의 여신’, ‘조선총잡이’, 영화 ‘불신지옥’, ‘복숭아나무’ 등 최근 작품 속의 남상미를 보면 어둡고 조용하고 착하기만 하다. 실제로도 차분할 것 같지만 ‘슬로우 비디오’에서 선한 심성을 같지만 길을 가다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등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수미 캐릭터가 남상미와 더 가깝다.
- 밝은 캐릭터 수미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지
▲ 일단 나는 정말 좋다. 다시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찾은 것 같아서 좋았다. 감독님과 차태현 선배님은 저를 보고는 ‘수미네’라고 하고 주변에서도 날 닮은 영화가 나왔다고 하더라. 와일드하고 행동이 앞서고 이것저것 재지 않고 돌진하는 게 닮았다고 했다. ‘조선총잡이’의 수인이가 수미보다 더 가깝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내가 똑똑해 보이냐’고 물어 봤다.(웃음)
- ‘슬로우 비디오’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 ‘결혼의 여신’ 막바지 촬영을 하고 있을 때 밝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 경쾌한 캐릭터를 해서 밝은 에너지를 하고 싶었다. 다음번에는 밝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슬로우 비디오’ 제안을 받았다. 원래는 쉬고 싶었으나 밝은 역할이 하고 싶어 ‘결혼의 여신’을 끝내고 바로 출연했다.
- ‘결혼의 여신’에서 정말 우울한 캐릭터였는데 바로 유쾌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어땠는지
▲ 배우들이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는데 나는 기회가 좋았다. ‘결혼의 여신’ 끝내고 바로 밝은 캐릭터를 연기해서 즐겁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연기로 힘들었던 걸 연기로 풀었다. 그런 걸 보면 내가 복이 많은 것 같다.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 수미 캐릭터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마음에 들었다.
▲ 나는 정말 좋았다. 김영탁 감독님이 시안을 보여주면서 ‘이 머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하더라. 아무래도 여배우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는 정말 좋아서 오케이 했다. 파마하고 나서 정말 편했다. 쉬는 기간에 그 머리를 하고 싶을 정도다. 머리를 묶어도 볼륨이 있고 머리 감고 나서 탈탈 털면 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못알아 보더라.(웃음) 그리고 그 헤어스타일에는 그런 옷밖에 안 어울린다. 내가 작품을 하면서 캐릭터에 따라 옷을 사는 편인데 수미를 연기할 때 니트를 엄청 샀다. 집에 많다.
- 이번 연기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 이번 현장에서는 나를 내려놨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제일 많이 한 말이 ‘여배우가 저렇게 해도 돼?’였다. 수미를 연기하기보다는 나를 내려놨다. 패딩을 걸친 채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면 난로의 온기에 잠이 오더라. 보통 현장에서 긴장하는데 얼마나 내려놨으면 감독님이 ‘원래 여배우들이 길에서 자냐’고 하면서 ‘나 같은 여배우 처음 봤다’고 하더라. 수미이기에 가능한 거였다. ‘조선 총잡이’ 때나 ‘결혼의 여신’, ‘인생은 아름다워’, ‘빛과 그림자’ 에서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오랜만에 내려놓는 걸 했다.
- ‘슬로우 비디오’를 찍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 감성적인 정취가 좋았다. 요즘은 아파트도 주상복합이고 모든 게 스마트폰도 편리하고 빠른 걸 위주로 돌아가는데 우리 영화는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다. 추억이 있고 향취가 있다. 숨고르기 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들도 좋더라. 그림이 간결하고 무심한 듯 터치한 건데 정감 가는 게 있다.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상업영화인 줄 알았는데 완성본을 보니 서정적인 느낌이 있더라. 현실적인 느낌이 나지 않고 동화적이었다.

- 배우 차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왔고 함께 작업해 보니 어땠는지
▲ 중학교 때 팬이었다. 차태현 선배님이 춤추고 노래할 때 팬이었는데 그 후 드라마, ‘1박2일’ 등 예능으로 접하면서 굉장히 밝고 웃음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24시간 동안 개구지고 장난칠 줄 알았다. 그런데 집중력이 엄청 대단하더라. 함께 작업을 하니까 느껴지는 게 연기자로서의 기운이 확실하게 느껴지더라. 카리스마도 있고 현장에서는 스태프들의 기운, 공기를 다 신경 쓸 정도로 확 돌변했다.
- 남상미는 착한 이미지가 정형화돼있는데?
▲ 악역이나 카리스마 있는 액션을 하고 싶다. 나는 자신이 있는데 대중이 원할지 모르니까. 기존의 착한 걸 기대하지 않게 할 자신이 있는데 많은 분들이 아직은 그에 대해 퀘스천 마크인 것 같다. 남상미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있으니까. 배우인지라 욕심이 있어서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지만 극복하는 게 나의 숙제인 것 같다.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부지런히 끊임없이 신뢰를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두드리면 언젠가 열릴 거다.
- 20대의 연기와 30대의 연기, 무엇이 다른지?
▲ 20대에는 부담감이 덜했다. 20대이기 때문에 용서가 되는 게 분명 있는데 지금은 부담감, 책임감, 기대감을 가지고 연기한다. 20대 때는 지금보다는 더 많이 알아갈 게 많으니까 가볍게 했는데 지금은 하나에 집중을 해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하나의 감정에 몰입한다는 게 순수해지지 않은 것 같다. 배우로서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초심으로 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수미가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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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