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야구톡톡] ‘최선과 존중’ 일-파키스탄의 스포츠 정신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09.24 13: 06

파키스탄은 ‘야구 불모지’다. 뭔가를 들고 친다고 하면 모든 이들이 ‘크리켓’을 생각한다. 야구가 전파된 것은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은 1992년의 일이다. 그러나 그런 파키스탄도 야구를 한다. 물론 어색하고 또 어설프다. 장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수준이 높아진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 반대의 팀이 있다. 아시아 야구 최강국에서 왔다. 물론 프로는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여건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 고교 팀만 4000개가 넘는 나라에서 성장하다 보니 어릴 때 배운 기본기는 탄탄하다. 의외로 실력이 좋아 프로팀에서 노리는 선수들도 있다. 일본이다. 그런 일본을 파키스탄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리고 그런 파키스탄을 일본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최선과 존중이 있었다. 진정한 스포츠 정신의 화합이었다.
일본과 파키스탄은 23일 문학구장에서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야구 A조 예선 경기를 가졌다. 아무리 사회인 선수들이 주축이 된 일본이라 하더라도 파키스탄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판을 쳤다. 실제 파키스탄은 이번 대회에서 24명까지 채울 수 있는 선수단에 17명만을 데려왔다. 코치도 없었다. 감독이 전부였다. 경기장을 찾은 일본 취재진은 물론 한국 취재진도 콜드게임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이는 파키스탄에서 온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1회 3안타로 먼저 득점을 내는 등 신을 냈다. 물론 리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선발 투수 외에는 경쟁력 있는 투수가 없었다. 선발이 내려간 2회 이후에는 주르륵 실점했다. 기본기가 떨어지는 수비에서 빌미가 된 상황이 실점으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상황도 이어졌다. 웃음을 터뜨리는 관중들도 있었다. 파키스탄에 대한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상황 자체가 어쩔 수 없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러나 파키스탄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때로는 서로에게 화를 내면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콜드게임을 면하고 9회까지 경기를 했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낼 때는 어린 아이들처럼 팔짝 뛰기도 했다. 경기 막판으로 갈수록 힘이 부치는 모습이었지만 소중한 경험이 될 법했다. 그런 모습에 관중들도 점차 파키스탄의 편이 되어 갔다. 응원 목소리는 파키스탄 쪽이 더 컸다.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파키스탄에 처음으로 야구를 전파한 하바셔 파키스탄 야구협회 비서는 경기 후 자부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며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미래를 내다봤다. 하바셔 비사는 “파키스탄의 야구는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오늘은 일본과 같은 강팀을 만나 고전했지만 몽골과 중국과의 경기는 기대를 하고 있다”라면서 “공식적으로 연습은 한 달밖에 하지 못했다. 다음부터는 1년 정도 충분히 연습을 해 준비할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파키스탄의 이번 대회 목표는 중국을 잡는 것이다. 그렇다면 준결승 진출도 가능하다.
 
파키스탄이 그렇게 열심히 뛰어서일까. 일본도 스포츠정신을 보여줬다. 사실 국제대회에 가면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로는 대충 뛰는 일도 있다. 2진 선수들을 내보내는 식이다. “다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대놓고 말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평소 그들이 하던 대로 묵묵히 플레이했다. 희생번트, 도루, 그리고 매 이닝 이어진 투수 교체 등이 눈에 띄었다. 파키스탄을 상대로 일본 또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경기 후 고지마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일본은 이날 ‘대충 경기’의 의혹을 받았다. 일찌감치 콜드게임으로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지마 감독은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싸우라고 이야기를 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그것이 파키스탄을 존경하는 것이며 또한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일본과 경기를 하면서 파키스탄의 기량이 향상된다면, 그것 자체로 아시아 경기대회도 더 번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파키스탄은 한 수 위의 일본을 상대로 열심히 뛰며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일본 선수들의 안정된 글러브질이나 장타는 파키스탄 선수들의 뇌리 속에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도 그런 파키스탄을 상대로 봐주는 경기 없이 최선을 다해 뜀으로써 예의를 지켰다. 정정당당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는 원래 그런 것이다. 파키스탄 선수들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아시안게임 한 경기. 그리고 그 한 경기를 최대한 배려한 일본. 행여 누구는 그 '한 경기'를 대충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에게도 곰곰이 자문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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