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펜싱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 메달을 독식하며 아시아를 집어삼켰다. 선수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아낌없는 지원이 한 데 어우러진 결과다.
한국 펜싱은 지난 24일까지 10개의 금메달 가운데 8개를 싹쓸이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각 5개와 2개를 추가했다. 4년 전 광저우서 세웠던 최고 성적(금 7, 은 2, 동 5개)을 경신했다. 대회가 끝난 것도 아니다. 25일 남은 단체전 2종목서 추가 메달 사냥이 가능하다. 2012 런던올림픽서 '세계 2강'으로 거듭난 이후 한국 펜싱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 SK텔레콤의 아낌없는 지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펜싱 환경은 척박했다. SK텔레콤이 구세주로 나섰다. 2003년부터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이 대한펜싱협회장을 맡아 2008년까지 연간 3억 5천만 원에서 5억 원을 지원했다. 2009년 손길승 명예회장이 대한펜싱협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대폭 지원을 늘렸다. 부임 첫 해 12억 원을 지원한 뒤 매년 평균 20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손 회장이 2009년 처음으로 내세운 건 비전 2020이다. 현 펜싱의 문제점을 파악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내다봤다.
주안점은 국제대회 출전이었다. 대한펜싱협회는 그간 여건이 열악해 국제대회 중 반만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SK텔레콤의 전폭 지원을 받은 뒤론 모든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파견하고 있다. 두 가지로 요약된다. 랭킹 상승과 경험 쌓기다. 펜싱은 랭킹에 따라 시드배정을 한다. 국제 대회 출전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포인트가 높아진다. 이는 곧 시드 획득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예선을 거르면서 체력을 아끼고, 랭킹이 높은 선수를 피할 수 있어 호성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엔 비전 2020을 업그레이드했다. 태릉 입촌 선수는 한 종목당 8명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보고 세대 교체를 준비하고 있다. 당초 주전 4명의 선수만 국제대회에 보냈는데 이젠 후보 4명까지 모두 내보낸다. 연간 10억 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간다.
SK텔레콤은 한국 펜싱의 저변 확대를 위해 2010년과 2011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유치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농구장인 고양실내체육관을 아시안게임의 위상에 걸맞은 펜싱 경기장으로 개조하면서 2억여 원을 투자했다. 50명의 열혈응원단을 모집해 응원을 주도하며 분위기도 끌어올렸다. 펜싱 유망주들을 대거 초청해 가슴 속에 '나도 남현희가 될 수 있다'라는 꿈을 품게 했다.
손길승 회장이 선수들에게 매번 강조하는 말이 있다.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한 영화 '명량'의 이순신 전법이다. "내가 제일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라. 피스트(펜싱 경기장)가 명량이나 바다라 생각하고 유리한 전법을 가져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영호 대한펜싱협회 이사는 "SK텔레콤의 지원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대한펜싱협회가 못했던 걸 손길승 회장님이 해주시고 있다"면서 "후원사의 지원을 통해 메달 획득 여부가 가려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성적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고마워했다.
▲ 피땀어린 노력
땀방울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스포츠에도 통용되는 만국의 진리다. 특출난 재능을 가진 선수더라도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 빛을 오롯이 발할 수 없다. 반면 재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구슬땀을 흘린다면 노력형 천재가 될 수 있다.
최근 한국 펜싱이 국제 무대에서 보여준 눈부신 성과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런던의 기적을 경험한 태극 남매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수없이 피스트에 올라 찌르고 또 찔렀다. 더 빠른 스텝을 만들었고, 그에 상응한 손동작도 갖췄다. 유럽의 장신을 상대할 수 있는 무서운 스피드를 보유했다.
이번 대회 남자 에페 2관왕인 정진선은 "새벽 5시 50분부터 저녁 9시까지 훈련을 했다. 핸드폰 만질 시간도 없을 정도로 훈련 뒤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길 반복했다. 외부와 차단한 채 훈련만 해왔다"고 했다. 여자 사브르 2관왕 이라진도 "많은 훈련량으로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죽기살기로 칼을 갈며 시상대 꼭대기 위에 설 날만을 기다린 것이다. '지독한 훈련량'은 한국 펜싱의 가장 큰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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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길(위)-전희숙.